Seunghoon Jeong/Hypebeast
다섯 사람이 같은 속도로 나아가는 일은 드물다. 누군가는 멈추고, 앞서가고, 전혀 다른 방향으로 몸을 틀기도 한다. 결성 5년 차를 맞은 1300은 그 어긋남까지 포용하는 법을 배웠다. 이들의 첫 정규 앨범 <ILLSAMGONGGONG>은 이런 과정을 거쳐 탄생했다. 앨범에는 다섯 멤버가 각자 듣고 자란 음악과 호주와 한국을 오가며 축적된 시간이 담겼다. 그 흔적은 사운드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다. 어딘가 익숙한 2000년대 ‘국힙’의 코드와 호주의 밴드 사운드, 전자음악의 요소가 뒤섞여 있다. 이 음악이 어디에서 왔는지 굳이 하나만 골라 답하기는 어렵다. 어쩌면 가장 정확한 답은 앨범 제목 속에 있을지도 모른다. <하입비스트>는 1300의 다섯 친구에게 두 나라를 오가며 만든 음악, 그리고 서로에 관해 물었다.
최근 첫 정규 앨범 <1300>을 발매했어요. 지금 이 앨범을 직접 소개한다면 어떤 앨범이라고 말하고 싶나요?
달리: 저희가 좋아하는 음악을 통해 다 같이 모였고, 마음이 맞아서 같은 비전을 바라보며 긴 여정을 떠났다가 다시 집으로 돌아오는 스토리를 담은 앨범이에요. 사실 이번 앨범의 제목은 원래 ‘Homesick’이 될 뻔했어요. 그러다 저희에게 권태기가 왔고, 그 시기를 지나 다시 돈독해지는 과정이 있었어요. 그러면서 서로가 서로의 집이라는 걸 느꼈죠. 그런 의미에서 앨범 제목을 저희 팀 이름인 <ILLSAMGONGGONG>으로 정했어요.
안 그래도 앨범 소개글의 “집 대신 우리의 이름을 앨범 제목으로 정했다”는 문장이 눈에 띄더라고요.
라코: 저희에게 집은 물리적인 장소가 아니에요. 기독교에 “교회는 건물이 아니라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라는 말이 있어요. 이와 비슷하게 권태기를 거치고 나서, 저희가 가장 편하게 지낼 수 있는 사람들이 모여 있는 1300이 곧 집이라고 생각해서 그렇게 정했어요.
권태기는 팀과 음악에 어떤 모습으로 나타났나요?
라코: 음악이 좋아서 활동을 시작했더라도 같은 루틴이 반복되면 서로 미워지거나 멀어지는 시기가 오는 것 같아요. 지금 생각해 보면 아무래도 저희가 음악으로 모였던 만큼, 음악에 권태감을 느꼈을 때 팀의 관계에도 권태가 온 것 같아요. 그런데 그 시기를 뚫고 나면 더 오래가고 돈독해지는 것처럼, 저희도 그 문제를 파고들어 서로 깊은 대화를 나누면서 더 가까워졌어요. 말하기 힘들었던 이야기도 터놓고 말할 수 있게 됐고요. 전에는 친구였다면 지금은 관계가 그보다 더 깊어진 느낌이에요.
고요: 저희가 워낙 자연스럽게 만난 사이여서 관계를 의식하지 않고 계속 같이 생활했던 것 같아요. 그런데 어느 순간 의식해 보니 조금씩 멀어져 있었던 거죠. 그런 관계가 겉으로는 드러나지 않아도 음악에서는 어두운 분위기로 나타난다고 생각해요. 반대로 다시 생각을 정리하고 서로를 인정하기 시작하면서 이번 앨범에 들어간 곡들이 나올 수 있었던 것 같아요.
‘sick’은 꽤 오래전에 만들어진 곡이라고요. 정확히 언제, 어떤 시기에 만들어졌나요?
달리: 2년 정도 됐어요. 당시에는 일상과 음악 사이의 균형을 잡는 데 조금 지쳐 있었어요. “이걸로 언제쯤 제대로 성공해서 음악만 하며 살 수 있을까?”라는 고민도 있었고요. 음악에 대한 미움과 사랑이 동시에 존재하던 시기에 나온 노래예요.
널디: 곡 자체는 굉장히 자연스럽게 나왔어요. 지금 발표된 음원이 2024년에 만든 버전 그대로예요.
라코: 마지막 곡이 될 뻔했어요. 이 노래를 만들고 나서 권태기가 왔거든요(웃음).
‘sick’을 이번 앨범을 위해 남겨둔 이유는 무엇인가요?
라코: 아껴둔 것 같아요. 만들고 나서 “이건 앨범감이다”라는 생각이 직감적으로 들었거든요. 저희가 느끼고 있던 하나의 감정에서 여러 갈래로 가지를 쳐보자는 출발점이 된 곡이기도 했고요. 그래서 권태기를 이겨낸 다음 이 곡을 중심으로 앨범을 확장해보자고 생각했어요.
이번 앨범은 상당히 다양한 장르의 사운드를 담고 있어요. 멤버들의 음악 취향도 서로 극명하게 다른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앨범에는 각자의 취향이 어떻게 반영됐나요?
고요: 장르적인 방향은 프로듀서 친구들이 많이 이끄는 편이에요. 항상 프로듀서들이 비트를 먼저 만들고, 거기에 저희가 랩을 얹는 방식으로 작업하거든요.
널디: 저는 한국 음악을 많이 들었어요. 에픽하이와 서태지를 많이 들었고, 케이팝이나 발라드도 들었어요.
포카리: 저는 그냥 놀면서 만들어요. 보통은 베이스와 드럼부터 시작해요. 베이스와 드럼으로 기본적인 프레임워크를 만든 다음 프리 프로덕션을 거치고, 거기에 여러 요소를 집어넣죠.
호주에서 활동을 시작한 만큼, 호주의 음악 신은 한국의 음악 신과 어떤 점에서 가장 다른지도 궁금했어요.
널디: 호주에서는 하고 싶은 음악을 할 수 있는 것 같아요. 사람들이 굉장히 다양한 장르를 열어두고 들어요. 한국도 점점 그렇게 변하고 있지만, 사람들과 이야기해 보면 호주와는 음악의 역사나 인프라가 다른 것 같아요.
예컨대 호주에는 라이브 음악과 밴드 문화가 강하게 자리 잡고 있어요. 인구가 한국보다 훨씬 적은 데 비해 언더그라운드 신도 굉장히 다채로워요. ‘랜덤’한 음악을 만드는 사람들이 정말 많아요.
포카리: 한국에는 케이팝처럼 음악 산업의 중심이 되는 하나의 거대한 축이 있는 것 같아요. 호주에는 전체를 지배하는 하나의 음악이 없어요. 댄스 팝도 있고 밴드도 있지만, 하나가 전부를 통제하지는 않죠.
널디: 대신 호주에서는 밴드가 크게 성공하면 떠나요. 테임 임팔라처럼요. 호주에서 시작하지만 규모가 커지면 미국이나 유럽을 중심으로 활동하게 돼요. 같은 영어권이라는 점 때문인지 유럽이나 미국으로 바로 연결되는 경로가 있는 것 같아요. 디제이들도 마찬가지고요.
같은 영어권이라는 점에서 오는 이점이 분명히 있을 것 같아요. 반대로 한국어로 음악을 하는 1300에게 호주는 어떤 환경이었나요?
라코: 호주는 다문화 사회가 된 지 굉장히 오래됐어요. 그래서 저희가 한국어로 음악을 해도 시작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한국에서 영어나 한국어가 아닌 언어로 가사를 쓰는 팀보다, 호주에서 한국어로 시작하는 게 오히려 쉬웠을 수 있겠다고 생각해요.
호주에서는 라이브 공연으로 시작하기도 쉬워요. 무대에 설 기회도 많고, 큐레이션의 범위도 넓어요. 작은 아티스트들만 모은 페스티벌도 많고요. 관객이 아티스트를 몰라도 일단 그 자리에 있으면 공연 자체를 즐겨요.
대신 한국 관객은 아티스트를 정말 아티스트답게 대해주는 것 같아요. ‘떼창’도 잘해주고요. 양쪽 모두 장단점이 있는 것 같아요.
1300이 호주에서 본격적으로 이름을 알리게 된 계기는 무엇이었다고 생각해요?
고요: 두 번째 싱글을 냈을 때부터였던 것 같아요. 라디오에서 저희 곡을 틀어줬는데, 그때부터 공연 제안이 들어오기 시작했어요. 이후에 ‘Oldboy’를 냈고, 마침 <기생충>과 <오징어 게임>을 비롯한 한국 콘텐츠가 크게 주목받던 시기와 맞물리면서 저희도 더 알려지기 시작한 것 같아요.
1300은 스스로 호주 음악 신 안에서 어떤 위치에 있다고 느끼나요?
라코: 한국과 호주 양쪽에서 이방인 같아요. 한국에서는 호주에서 활동하는 한국인 팀이고, 호주에서는 한국어로 랩을 하는 사람들이니까요. 이번 앨범에서 우리 집은 여기밖에 없다고 이야기한 것도 그런 이유예요. 두 나라 모두 즐겁고 사랑하는 친구들이 많지만, 음악 신 안에서 집이라고 콕 집어서 부를 만한 곳은 없었거든요.
반대로 그런 모호함을 즐기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해요.
라코: 그런 것 같기도 해요. 사실 한국과 호주를 넘어 더 많은 국가에서 모호해지고 싶어요(웃음).
호주에서 활동하면서 한국 힙합 및 인디 음악 신의 흐름은 어떤 방식으로 따라가나요?
라코: 요즘에는 국내 음악 이슈만을 다루는 온라인 매거진도 많고, 어릴 때부터 한국 음악을 계속 들어왔기 때문에 알고리즘에서 추천하는 음악도 대부분 한국 음악이에요. 특히 요즘 한국 음악은 정말 풍년인 것 같아요. 당장 저희 앨범이 발매된 뒤 일주일 사이에도 좋은 음악이 정말 많이 나왔더라고요(웃음).
고요: 저희가 외국에서 살았다고 해서 투팍이나 비기를 듣고 랩을 시작한 게 아니에요. 저희 모두 한국 힙합을 들으면서 자랐거든요.
이전 작업에서도 그랬지만, 이번 앨범에서도 태평소를 비롯한 한국적인 사운드를 적극적으로 활용했어요. 이런 요소를 가져올 때 ‘한국을 보여주겠다’는 의식적인 판단을 하나요?
널디: 서태지 음악을 듣는데 태평소가 나오더라고요. 그게 멋있었어요. 태평소를 직접 사고 싶어서 동묘에서 찾아봤는데 못 찾았어요. 이번에는 꼭 사려고요.
현재 1300이 음악을 통해 보여주고 싶은 한국의 모습이 있나요?
고요: 최근 한국인이나 동양인이 등장하는 콘텐츠가 예전보다 훨씬 많아졌는데, 저희 인생은 미디어에서 비춰지는 모습과는 조금 다르다고 생각해요. 저희도 음악을 하면서 각자의 직업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어요. 평범한 모습도 있고, 아닌 부분도 있겠죠. 적어도 저희가 팀으로서 보여줄 수 있는 건 “우리 같은 사람도 있다”는 메시지인 것 같아요. 앨범에서도 그런 모습을 보여주려고 했고요.
라코: 한국의 모습을 보여주자는 생각도 분명 있었지만, 결국엔 그냥 우리를 보여주고 싶었어요. 저희처럼 살아가는 동양인 친구들이 호주에 굉장히 많지만, 미디어에서는 그런 삶이 잘 보이지 않는 것 같거든요.
예컨대 해외에서 동양 음악이라고 하면 케이팝처럼 화려하고 완벽한 모습을 떠올리는 경우가 많아요. 저처럼 생긴 사람도 조명 아래에서 멋있는 음악을 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던 것 같아요.
그 목적은 달성한 것 같나요?
고요: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는 것 같아요. 한 번은 공연이 끝나고 호주에서 사는 한국인 관객이 와서 “너희 같은 사람들이 있는게 자랑스럽다”고 울면서 말씀하셨어요. 딱 그런 거예요. 스테레오타입을 지킬 필요도, 의도적으로 깰 필요도 없고, 딱 그 사이의 스펙트럼 어딘가에 있을 수도 있다는 걸 보여주는 거죠.
기리보이, 김심야, 창모, 디케이를 비롯한 앨범 참여진은 어떤 기준으로 정했나요?
고요: 음악을 먼저 완성한 뒤, 무언가를 더 채우면 좋겠다고 느껴지는 부분이 있으면 누가 그 자리에 어울릴지를 고민했어요. 그런 과정을 거쳐 연락을 드리고 참여진을 정했죠.
라코: 기리보이 형과는 과거 전자음악을 기반으로 한 EP <GRB08>에 저희가 피처링한 것을 계기로 인연이 이어졌어요. ‘Headrock’도 전자음악에 기반한 사운드라 기리보이 형과 함께 풀어내면 재미있을 것 같아서 부탁드렸어요.
김심야 님이 참여한 곡은 예전에 심야 님과 작업하려다가 성사되지 않았던 게 생각나 다시 연락을 드리면서 함께 할 수 있었어요.
창모 형님이 피처링한 ‘100’은 먼저 형님께 곡을 보내드렸는데 한동안 바쁘셔서 연락이 없었어요. 마침 호주 출신인 디케이가 <쇼미더머니>에 나온 걸 보고 이 곡에 꼭 필요하다고 생각해 먼저 벌스를 받은 상태였어요.
그런데 디케이에게 벌스를 받은 지 이틀 뒤에 창모 형님에게 “아직 안 늦었나요?”라고 연락이 온 거예요. 그래서 바로 “아직 늦지 않았습니다, 형님”이라고 보내고 피처링을 받았죠. 두 분 모두 랩이 묵직한 스타일이라 한 곡에서 만나면 좋을 것 같았어요.
각 아티스트와의 작업 과정에서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도 있나요?
라코: ‘Headrock’ 뮤직비디오 촬영이요. 기리보이 형님에게 피처링을 받고 나서 형님이 갑자기 “이 곡은 뮤직비디오를 안 찍나요?”라고 물으셨어요. 그래서 “찍고 싶으세요?”라고 했더니 “찍으면 호주에 갈게요”라고 하시더라고요.
다들 말로만 호주에 오겠다고 하고 실제로 오는 사람은 백 명 중 열 명도 안 되는데, 형님은 바로 비행기 표를 사서 오셨어요. 산동네에 가서 기리보이 형님을 뛰게 하면서 촬영했죠. 초저예산 뮤직비디오라 고생을 좀 하셨어요(웃음).
이번 앨범을 만들기 전과 완성한 후를 비교했을 때, 1300에게 가장 크게 달라진 것은 무엇인가요?
라코: 저희의 장점은 머리가 다섯 개라는 걸 깨달았어요. 한 사람의 귀로만 판단하는 게 아니라 팀 안에 다섯 개의 귀가 있는 거죠. 이제 그걸 제대로 활용하는 방법을 알게 된 것 같아요.
예전에는 각자의 기량을 뽐내고 싶어 했다면, 이번 앨범에서는 비트가 빛나야 하는 부분에서는 랩이 빠져주고, 누군가의 벌스가 빛나야 하는 부분에서는 프로덕션이 뒤로 빠져줬어요.
포카리: 프로덕션 면에서는 더 의도적으로 곡을 만들게 됐어요. 저와 널디의 팀워크도 좋아졌고요. 각자의 아이디어를 밀어붙이기보다 서로의 아이디어가 들어올 공간을 더 많이 만들어줘요.
제가 무언가를 먼저 만든 뒤 한두 달 동안 같이 들어보고, 널디가 아이디어를 내면 함께 시도해봐요. 그렇게 계속 실험하면서 가장 좋은 결과를 찾아가는 것 같아요.
달리: 개인적으로 이번 앨범을 내고 나서 앞으로 만들 음악이 더 기대돼요. 부터 <ILLSAMGONGGONG>에 오기까지 매번 프로덕션과 랩 모두 계속 업그레이드되는 게 체감됐어요. 그래서 다음 프로젝트가 기대돼요.
앨범을 마무리할 즈음에서야 삶의 이유에 대한 답을 찾았다고 했어요. 그 답은 무엇인가요?
라코: 이제 저희는 부모님이나 여자친구에게도 말하지 않은 것을 서로 모두 아는 사이가 됐어요. 여기만큼 편한 곳이 없는 것 같아요. 서로가 서로의 집이었다는 게 바로 이 앨범의 정답이에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