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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매혹적인 이집트, 시간을 초월한 빛
vogue · 2026년 7월 27일

가장 매혹적인 이집트, 시간을 초월한 빛

이집트의, 이집트에 의한, 이집트를 위한 찬미.

정교한 프레스코화를 연상시키는 ‘매혹적인 이집트’ 컬렉션의 팔찌 시리즈. 위부터 파라오의 관이 놓인 신전을 연상시키는 ‘페이사쥬 에테르넬’, 기둥 사이에 자리한 상형문자에 ‘영원의 지평선’이라는 메시지를 담은 ‘페이사쥬 시크릿’, 파라오 마스크를 팝아트처럼 표현한 ‘페이사쥬 로얄’, 밤의 피라미드 풍경을 담은 ‘페이사쥬 메르베이유’ 팔찌. 빛을 투과시키는 오픈 워크 방식으로 스톤의 광채를 극대화했다.

지금 당장 가고 싶은 곳을 묻는다면 지난해 11월 개관한 이집트 대박물관(Grand Egyptian Museum)이다. 2005년 착공해 장장 20년에 걸쳐 완공된 이곳의 소장 유물은 10만여 점. 대중에 공개하는 건 그중 일부인 5만7,000여 점이나, 세계 최대 박물관으로 꼽히는 루브르의 전시품이 3만5,000여 점이라는 사실을 감안하면 압도적인 규모다. 모든 유물을 관람하려면 꼬박 두 달도 부족하다니 호기심이 발동할 법도 하다. 하지만 솔직히 고백하자면 처음 이집트 문명에 관심을 가진 계기는 단순하게도 만화책 때문이었다. <신의 아들 람세스>. 1980년대에 태어나 순정 만화 좀 읽었다는 사람이라면 알 수도 있다. 고고학을 연구하는 21세기 여성이 3,000년 전 고대 이집트로 타임 슬립 해서 벌어지는 전형적인 로맨스물이다. 자극적으로 전개되는 이야기보다도 이국적인 건축과 옷차림, 메이크업에 온 마음을 빼앗겨 한때 고고학자를 꿈꾸기도 했다. 시간이 지나며 만화는 잊히고 장래 희망도 바뀌었지만, 지난 6월 파리에서 느닷없이 당시의 설렘이 되살아났다. 아이라인을 길게 뺀 이집트 여인이 눈앞에 등장했기 때문이다. 반짝이는 주얼리를 착용한 채.

비가 부슬부슬 내리던 지난 6월 9일 저녁, 반클리프 아펠은 새로운 테마의 하이 주얼리 컬렉션 ‘매혹적인 이집트(Fascinating Egypt)’를 선보이기 위해 세계 곳곳에서 모인 게스트를 샤요궁(Palais de Chaillot)으로 초대했다. 태양을 실은 거대한 배가 등장하고, 고대 이집트인 차림을 한 무용수와 오페라 가수의 공연 속에서 풍성한 만찬이 이어졌다. 그러나 모든 극적인 연출 속에서 모두의 마음을 사로잡은 주인공은 단연 주얼리였다. 에메랄드와 진주가 폭포수처럼 쏟아지고, 큼직한 유색 보석이 고유의 빛깔을 뽐내며 존재감을 드러냈다. 전시장에서도 분명 감탄이 흘러나올 정도로 아름다웠지만, 주얼리는 역시 착용할 때 생명력이 넘친다. 컬렉션에 대한 설명은 굳이 필요 없었다. 고대 이집트 왕족이 가슴에 두르던 장식을 닮은 옐로 다이아몬드 목걸이와 곳곳에 달린 파라오와 클레오파트라 형상의 클립만으로도 충분했으니까. 모델이 착용한 건 그저 아름다운 주얼리가 아니라 금과 보석으로 압축된 고대 문명이었다.

이름만 들어도 짐작할 수 있듯 컬렉션은 인류 역사상 가장 영향력 있는 문명을 주제로 한다. “고대 이집트의 매혹은 하나로 설명되지 않습니다.” 갈라 디너에 앞서 <보그>와 만난 반클리프 아펠 회장 겸 CEO 캐서린 레니에(Catherine Renier)가 말문을 열었다. 크림색 피케 셔츠와 벽돌색 바지를 조합한 단정한 차림 덕분인지 그녀의 목에 걸린 커다란 ‘로즈 드 노엘(Rose de Noël)’ 목걸이에 종종 시선을 빼앗겼다(갈라 디너에서는 카키색 케이프 드레스에 하이 주얼리 팔찌와 목걸이를 착용했다). “반클리프 아펠은 매년 문학이나 예술적 표현에서 영감을 얻은 보편적인 테마를 깊이 있게 연구합니다. 이번에는 이집트라는 이국적인 문화가 메종과 지난 수 세기 동안 예술계 전반에 끼친 영향에 주목하게 되었죠. 첫 단계는 아카이브로 돌아가는 것이었습니다.” 반클리프 아펠은 메종이 설립된 1906년까지 거슬러 올라갔다. 당시 예술계는 이집트 유산에 대한 새로운 관심이 고조된 상황이었다. 1909년 세르게이 디아길레프(Sergei Diaghilev)의 발레 뤼스(Ballets Russes)가 샤틀레 극장에서 선보인 <클레오파트라> 공연이 고대 이집트에 대한 환상을 불러일으켰고, 1922년 영국 고고학자 하워드 카터(Howard Carter)가 투탕카멘의 무덤을 발견하면서 이집토마니아(Egyptomania)라고 불리는 문화 현상에 불이 붙으며 전 세계가 파라오 시대에 빠져들었기 때문이다. 반클리프 아펠은 즉각적으로 이 흐름에 동참했다. 1923년과 1924년, 이집트에서 영감을 받은 주얼리 시리즈를 제작한 것이다. 헤리티지 컬렉션에 남아 있는 ‘이집트 패턴(Egyptian Pattern)’ 팔찌는 이집트 열풍이 얼마나 빠르게 주얼리로 스며들었는지 정확히 보여준다.

이 연결 고리는 1930년대 후반에 이르러 이집트 왕실로까지 이어졌다. 1939년 파우지아(Fawzia) 공주의 결혼식을 위한 주얼리 세트 제작을 의뢰받은 것이 인연의 시작이다. 티아라 하나에만 무려 92캐럿에 달하는 페어 컷 다이아몬드를 세팅했으며, 그녀의 어머니 나즐리(Nazli) 왕비가 착용할 플래티넘 다이아몬드 목걸이도 함께 만들었다. 결혼식 이후 이집트 왕족은 종종 메종의 작품을 구입하며 세간의 관심을 끌었다. 그중 1946년 파우지아의 자매 파이자(Faiza) 공주가 구매한 ‘피오니(Peony)’ 클립이 대표적인 예. 1937년 파리 국제박람회에서 선보인 작품으로, 탐스러운 루비 꽃잎이 미스터리 세팅의 정수를 보여준다. 동일하게 루비를 활용한 미스터리 세팅으로 세 송이의 연꽃 모티브를 형상화한 이번 컬렉션 속 ‘플레르 드 로투스 미스테리유즈(Fleur de Lotus Mystérieuse)’ 클립이 자연스럽게 연상된다. 이처럼 역사적인 걸작은 오늘날 새로운 창작에 영감을 불어넣는다. 콜롬비아산 에메랄드와 진주 드롭이 방사형으로 펼쳐지는 ‘프린세스 뒤 닐(Princesse du Nil)’ 목걸이 역시 파이자 공주가 소장하고 있는 1929년의 ‘칼라렛(Collerette)’ 목걸이가 가진 미학을 이어받은 것이다.

“메종 아카이브의 이집트에 대한 모든 영감을 끌어냈습니다. 실현된 작품뿐 아니라 제작되지 않은 드로잉까지 모두 살펴봤죠. 이 클립은 1924년 드로잉에서 직접적인 영감을 많이 받은 작품입니다. 오직 스케치로만 접해왔던 디자인이죠.” 레니에는 터키석 테두리로 둘러싸인 ‘나라시옹 뒤 솔레이유(Narration du Soleil)’ 클립을 가리켰다. “원래 오닉스였는데 터키석으로 변경했습니다. 로즈 컷 다이아몬드로 태양을 표현해 더 특별한 광채를 선사했죠. 태양 광선은 각각 개별적인 옐로 골드 조각으로 표현했고요. 디자인 스튜디오는 클립 구조를 현대적인 감각으로 재해석하고 더욱 견고하게 만드는 작업에 심혈을 기울였습니다.”

물론 모든 작품이 아카이브에서 비롯된 것은 아니다. “컬렉션을 통해 우리가 생각하는 이집트마니아가 무엇인지 보여주고자 했습니다. 메종의 헤리티지를 기반으로 하되, 오늘날의 관점에서 더 현대적으로 해석하고 싶었죠.” 반클리프 아펠 디자인 스튜디오는 더욱 깊이 있는 연구를 위해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파리 루브르 박물관, 베를린 신 박물관(Neues Museum) 등 유서 깊은 여러 박물관을 직접 방문했다. “수천 년의 시간을 품은 유물이 지극히 현대적인 공간에 자리한 모습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이 경험을 통해 컬렉션의 일부 작품은 고대성과 현대성을 결합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렇게 탄생한 것이 ‘프라그망(Fragment)’ 클립 시리즈다. 고대 유적지에서 방금 발굴된 듯한 불규칙한 윤곽을 지녔다. 코럴, 터키석, 라피스라줄리처럼 채도 높은 장식석 조각에 옐로 골드와 다이아몬드로 이루어진 상형문자 판을 조합해, 대비를 이루는 쿠션 컷 유색 보석으로 마무리했다. “세 가지 클립 모두 고유한 이야기를 품고 있습니다. 파편이 지닌 불규칙한 형태에 온전한 메시지를 새겨 넣어, 그 안에 담긴 깊은 의미를 드러내고자 하는 염원을 담았죠.” 실제로 위대함(Magnifique), 행복(Bonheur), 아름다움(Beauté)을 뜻하는 상형문자는 각각의 이름이기도 하다.

인터뷰 내내 테이블 위에는 모든 컬렉션 작품이 실린 책자와 최초로 상형문자를 해독한 장 프랑수아 샹폴리옹(Jean-François Champollion)의 <판테온 이집트> 한 권이 놓여 있었다. 이 책을 구성하는 레옹 장 조제프 뒤부아(Léon-Jean-Joseph Dubois)의 삽화 역시 주요 참고 자료였지만, 레니에는 반클리프 아펠이 지닌 ‘현대적인 시각’을 거듭 강조했다. “이집트 고대 유물의 물리적 흔적을 넘어 이집토마니아의 다양한 발현을 폭넓게 포용했습니다. 멤피스 그룹의 디자인처럼 더 우회적인 예술 사조와 작품을 참고한 것처럼 말이죠. 영화와 연극처럼 메종이 많이 다루지 않은 예술 형식도 반영했고요.” 6.59캐럿의 스리랑카산 사파이어를 세팅한 ‘오너먼트 드 사피르(Ornement de Saphir)’ 목걸이와 8.72캐럿의 루벨라이트를 세팅한 ‘파이앙스 로얄(Faïence Royale)’ 반지에서 에토레 소트사스(Ettore Sottsass) 작품 특유의 기하학 형태와 강렬한 색 조합이 두드러진 이유다. 클레오파트라를 표현할 때는 1963년 동명의 영화에 출연한 엘리자베스 테일러의 의상과 1988년 셰어의 할로윈 복장에서 도움을 받았다.

“‘데에세 아일레 미스테리유즈(Déesse Ailée Mystérieuse)’를 이야기해야 할 것 같군요.” 가장 소개하고 싶은 작품을 묻는 질문에 레니에가 곧바로 답했다. 신을 수호하는 날개를 구조적으로 표현한 목걸이로, 스노우 세팅한 다이아몬드와 트래디셔널 미스터리 세팅 기법으로 고정된 루비가 대비를 이룬다. 14.05캐럿에 달하는 페어 컷 다이아몬드는 분리해 반지로도 착용할 수 있다. “메종이 이집트의 영감을 어떻게 재해석했는지 확인할 수 있습니다. 미스터리 세팅과 변형 가능성까지 모두 담았을 뿐 아니라, 메종의 오랜 상징인 비대칭 구조를 이루고 있어요.” 이번 컬렉션에서 가장 오랜 제작 시간을 자랑하는 작품이기도 하다. 경도가 다른 루비와 다이아몬드를 함께 다시 커팅하는 작업이 매우 복잡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반클리프 아펠의 예술성은 독보적인 기술력이 있기에 가능하다. ‘피그망 미스테리유(Pigment Mystérieux)’ 반지는 에메랄드, 루비, 사파이어를 활용해 처음으로 세 가지 색의 미스터리 세팅을 결합했다. “보통 미스터리 세팅은 단색으로 유지합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다이아몬드와 다양한 장식석과 함께 대담함을 표현했어요. 미스터리 세팅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이자, 이전에 시도하지 않은 색채의 유희이기도 합니다.” 숨겨진 장인 정신이 한 가지 더 남았다. 컬렉션의 모든 작품에 반클리프 아펠을 뜻하는 상형문자 카르투슈 각인을 새겨 넣은 것이다. 찬란한 고대 문명에 바치는 일종의 헌사다.

그렇다면 왜 이집트였을까? 특히 지금 중동은 단순히 럭셔리를 소비하는 시장을 넘어 럭셔리와 문화를 유통하는 플랫폼으로 주목받고 있다. 이집트 대박물관, 루브르 아부다비, 그리고 완공을 앞두고 있는 구겐하임 아부다비 같은 세계적인 수준의 박물관이 존재하는 것은 물론 가장 명성 있는 두 아트 페어가 모두 중동에서 개최된다. 지난 2월 제1회 아트 바젤 카타르가 막을 올렸고, 11월에는 프리즈 아부다비가 예정되어 있다. 소더비 역시 지난해 리야드에 오피스를 열고, 디리야에서 첫 사우디 경매를 진행했다. 그야말로 중동에 대한 관심이 최고조에 달한 시기다. 현재 중동의 정치적 상황으로 인해 파리에서 이집트로 이동하는 일정이 취소된 게 아쉬울 수밖에 없다. “이집트는 수 세기 동안 영감의 원천이었기에, 우리는 그것을 진심으로 기념하고 싶었습니다.” 레니에는 순전히 우연의 일치라고 설명하며, 이집트가 모든 창작 활동에 여전히 큰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강조했다. 4년에 걸쳐 완성된 180점의 작품은 공식 론칭 전 대부분 판매되었다. 이는 ‘매혹적인 이집트’가 최근 몇 년간 가장 성공적인 컬렉션이었음을 보여주며, 고대 이집트가 여전히 전 세계를 매혹하고 있음을 다시 한번 증명한다. V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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