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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미스터리한 디자이너, 크리스토프 데카르넹이 돌아왔다
vogue · 2026년 7월 23일

가장 미스터리한 디자이너, 크리스토프 데카르넹이 돌아왔다

패션계는 ‘베일에 싸인’ 디자이너를 사랑해왔습니다. 공개적으로 얼굴을 드러낸 적이 한 번도 없는 마르탱 마르지엘라가 지금까지도 전설로 회자되는 것만 봐도 알 수 있죠. 패션계가 미스터리 못지않게 사랑하는 것이 바로 극적인 ‘컴백 스토리’입니다. 인종차별 논란 이후 재기에 성공한 존 갈리아노, 그리고 페리 엘리스에서 해고당한 뒤 루이 비통 최초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선임된 마크 제이콥스를 떠올려보세요.

발망 2011 봄/여름 컬렉션 직후 크리스토프 데카르넹. Getty Images

2011년 발망을 떠난 뒤 15년 동안 행방이 묘연했던 크리스토프 데카르넹(Christophe Decarnin)이 돌아왔습니다. 가장 컬트적인 디자이너가 ‘컴백’을 알린 거죠. 그는 복귀를 위해 스타일리스트, 부티크, 브랜드 등을 연결하는 패션 플랫폼 본드(Bond)와 손잡고 자신이 가장 잘하는 데님 컬렉션(발망 시절 그가 선보인 스키니 진은 지금도 고가에 거래됩니다)을 공개했습니다. 각각 고유 번호를 매긴 일본산 청바지로 구성된 이번 캡슐 컬렉션은 에디 슬리먼과 함께 ‘슬림 & 스키니’ 실루엣의 유행을 주도하던 데카르넹 특유의 미학을 그대로 담고 있습니다. 실루엣은 더없이 타이트하고 옆면에는 기다란 지퍼와 본디지풍 버클 여러 개가 달려 있죠. 오직 블랙과 화이트 두 가지 컬러로 총 888벌만 생산했습니다.

Courtesy of Bond

Courtesy of Bond

발망 시절 데카르넹은 이른바 ‘좋은 취향’과 ‘나쁜 취향’의 경계를 넘나드는 디자이너였습니다. 한눈에 봐도 정교하게 만들었다는 걸 알 수 있는 테일러드 재킷에 물이 잔뜩 빠지고 해진 청바지를 매치하는, ‘하이 앤 로우’ 스타일링이 그의 특기였죠. 이는 20세기 중반 크리스챤 디올의 라이벌이라고 불릴 정도로 고급스럽고 우아한 여성복을 선보였던 피에르 발망의 디자인과는 정반대였습니다. 데카르넹은 하우스의 DNA를 바꾸면서까지 럭셔리의 새로운 기준을 제시했고, 곧 발망은 엠마누엘 알트와 카린 로이펠드 등 프랑스 <보그> 에디터들의 유니폼이 되었습니다.

데카르넹은 2011년 갑작스럽게 발망을 떠났습니다. 정확한 이유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지만, 그에게 건강 문제가 있었을 것으로 추측하는 사람이 대부분이었죠. 이후 2014년부터 2017년까지 페이스 커넥션(Faith Connexion)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직을 맡았지만, 브랜드와 본인 모두 한 번도 이 사실을 공식적으로 발표한 적은 없습니다. 본드와 함께 캡슐 컬렉션을 발매하며 10여 년 만에 새로운 도전에 나선 크리스토프 데카르넹을 <보그>가 만났습니다.

이번 프로젝트를 ‘새로운 시작’의 계기로 볼 수 있을까요?

살면서 벌어지는 모든 일은 결국 저를 새로운 길로 이끄는 법이죠!

본드와의 협업은 어떻게 시작됐나요?

이런 일이 대부분 그렇듯, 특별한 인연에서 시작됐어요. 본드가 과거 저와 발망에서 함께 일했던 디자이너 박정미를 협업 개발 책임자로 영입했는데, 그녀가 저를 CEO 피터 그리피스(Peter Griffith)에게 소개했죠. 피터와의 미팅은 무척 수월했습니다. 처음부터 생각이 잘 맞았고, 곧바로 프로젝트를 시작했죠.

본드의 제안에 ‘예스’라고 답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피터의 에너지와 열정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럭셔리를 판매하는 새로운 방식도 흥미로웠고요. 패션 브랜드가 아니라 플랫폼과 협업한다는 발상도 매력적으로 다가왔습니다.

블랙과 화이트, 단 두 가지 컬러의 데님을 한정판으로 선보인다는 아이디어도 마음에 들었습니다. 요즘은 너무 많은 브랜드가 마케팅을 위해 럭셔리라는 단어를 남용하는 것 같아요. 럭셔리란 뛰어난 품질, 장인 정신, 희소성을 전부 갖추고 있어야 합니다. 대량 생산된 제품, 단지 가격만 비싼 아이템은 럭셔리라고 부를 수 없죠. 에르메스의 켈리 백이나 버킨 백을 떠올려보세요. 일단 구하기 어려울뿐더러 주문한 뒤 몇 달을 기다려야 하잖아요. 제가 생각하는 럭셔리란 바로 그런 것입니다. 요즘은 휴대폰을 끄고 조용하고 여유로운 공간에서 충분히 시간을 갖는 것도 럭셔리라고 부를 만해요. 지금 같은 시대에 그만한 사치도 없잖아요.

왜 데님이었나요?

Courtesy of Bond

Courtesy of Bo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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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오래전부터 일본산 데님으로 만든 캡슐 컬렉션을 선보이고 싶었어요. 예전부터 청바지를 정말 좋아했거든요. 입을수록 자연스럽게 물이 빠지고, 또 그만큼 애착이 생기는 게 데님이니까요. 원단을 고른 뒤 패턴을 수정하고 핏을 완성하는 과정은 많이 고되지만 그만한 가치가 있습니다.

데님은 어디에나 어울리고, 젊은 사람은 물론 나이 든 사람도 하루 종일 입을 수 있는 옷입니다. 몸의 일부처럼 편안해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기분이 들죠. 데님은 트렌드를 초월하는 가장 보편적인 아이템이죠.

일본산 데님 원단은 품질부터 가공 방식까지, 모든 면에서 최고 수준입니다. 본드와의 협업 컬렉션을 위해 일본산 데님을 선택하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죠. 또 하나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모든 옷에 제 이름을 새겼다는 점입니다. 브랜드를 론칭할 계획은 없지만, 작품에 서명하듯 이름을 남겼죠.

이번에 선보인 청바지가 특별한 이유가 있을까요?

인체의 곡선을 고려해 설계한 뒤, 밑단에 탈착 가능한 스트랩을 더했습니다. 최적의 핏을 위해 사이즈별로 세 가지 길이를 선보였고요.

버클 장식이 달린 스트랩을 보며 영국의 ‘올드 스쿨 펑크’를 떠올렸어요.

Courtesy of Bond

펑크뿐 아니라 고스족의 정신도 느껴지는 디테일이죠!

이번 협업을 음악으로 표현한다면?

제 플레이리스트를 랜덤으로 재생한 것과 같을 겁니다. 장르도, 시대도 다른 곡이 수천 곡 담긴 플레이리스트죠.

음악에서 어떤 영감을 받나요? 최근 어떤 곡에 빠져 있는지 궁금해요.

음악은 제 삶의 일부죠. 하루라도 음악을 듣지 않는 날이 없을 정도로요. 요즘은 더 키드 라로이, 로비 윌리엄스, 테이크 댓, 마일리 사이러스와 저스틴 비버에 빠져 있어요.

한동안 업계를 떠나 있었습니다. 패션 산업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있나요? 지금 같은 방식은 지속 가능할까요?

아니요. 패션의 수명은 점점 짧아지고 있어요. 사람들이 옷을 만드는 과정, 원단의 진짜 가치와 품질에 대해 더 많이 알았으면 합니다. 이전 세대가 그랬던 것처럼요. 옷을 고치고 또 고쳐 오래 입을 수 있는 환경도 조성됐으면 좋겠어요.

처음 패션과 사랑에 빠진 때를 기억하나요?

프랑스 북부의 작은 해안 마을에서 나고 자랐어요. 부모님이 모두 일을 하셨기 때문에 어릴 때는 그림을 그리거나 TV로 올드 할리우드 영화를 보며 혼자 많은 시간을 보냈죠. 집 안의 옷장을 뒤지던 중 오래된 옷을 발견한 게 결정적인 계기였어요. 낡은 군복, 턱시도, 1930년대에 만든 셔츠의 칼라, 손으로 한 땀 한 땀 만든 웨딩드레스를 보며 상상에 빠지기 시작했습니다. 그게 패션과 관련된 첫 기억이죠.

10대에는 가족이 입던 옷을 직접 자르고 염색하거나 페인트칠하기 시작했습니다. 친구들 옷도 수선하곤 했죠. 그 무렵 리처드 아베돈의 사진집 <Avedon: Photographs 1947-1977>을 처음 보고 엄청난 충격을 받았습니다. 제가 뭘 해야 할지는 몰랐지만, 그 세계의 일부가 되고 싶다는 생각만은 분명했어요.

1970년대 후반부터 1980년대 초반까지가 패션의 전성기였던 것 같아요. 창의성이 말 그대로 폭발하던 시대였죠. 디자이너들은 빈티지와 스포츠웨어를 자유롭게 섞고, 각자의 개성이 담긴 스타일을 개발했죠. 장 폴 고티에, 티에리 뮈글러와 아제딘 알라이아 같은 디자이너들은 기존 규칙을 완전히 부쉈고요. 패션쇼 형식이 바뀌고 다양한 체형과 인종의 모델이 런웨이에 등장하기 시작한 것도 그때쯤이었습니다. 훌륭한 스타일리스트들이 매거진에서 본격적으로 활약하기 시작했고요.

어린 시절 받은 영향 중 지금까지 이어지는 것이 있나요?

글쎄요. 그 모든 것이 여전히 제 안에 남아 있지 않을까요?

에스모드에 진학하기 위해 처음 파리로 갔을 때의 기억이 궁금합니다.

자유를 얻은 것 같았죠! 지루할 틈이 없었고, 새로운 친구들을 만나 같은 관심사를 나눴습니다. 지금과는 완전히 다른 모습의 도시를 새롭게 발견하는 시기였어요. 당시 파리는 ‘소울’이 넘쳤습니다. 작은 상점, 담배 가게, 진짜 파리지엔들… 물론 지금처럼 깨끗하지도 않았고 낙후된 지역도 많았지만, 훨씬 더 진정성 있는 곳이었죠. 지금 파리는 관광객을 위한 대형 박물관이나 다름없어요. 예전만큼 생동감 넘치고 신선한 느낌은 덜한 것 같습니다.

학교 이야기를 조금 하자면, 옷을 만드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배울 수 있었어요. 패턴과 재단의 기본을 익히며, 이 모든 게 1mm의 오차도 허용되지 않을 만큼 정교한 작업이라는 걸 그때 깨달았죠.

졸업 직후 라반에 입사했죠. 파코 라반과 함께 일했나요?

아쉽게도 그러지 못했어요. 당시에는 꾸뛰르와 기성복 팀이 완전히 분리되어 있었고, 사무실도 달랐거든요. 지금도 아쉽습니다. 파코 라반은 혁신적이고 천재적인 꾸뛰리에였으니까요. 1960년대에 그가 선보인 디자인은 지금도 전설로 남아 있습니다. 메탈릭 드레스를 입은 제인 버킨과 프랑수아즈 아르디의 모습을 상기해보세요! 수십 년 동안 파코 라반 곁에서 일했던 개인 어시스턴트와 함께 특별한 옷을 제작한 적은 있습니다. 그녀와 일하며 메탈 소재를 다루는 다양한 방법을 배울 수 있었죠.

라반에서는 무엇을 배웠나요?

패션 브랜드를 조금 더 추상적인 관점에서 바라보기 시작했어요. 흔히 ‘브랜드 DNA’라고 부르는, 몇 가지 단어와 코드만으로 거대 브랜드를 정의하는 방식 말이죠. 과거의 아카이브에 머무는 것보다 상상력과 창의력을 발휘해 ‘그 후’의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일이 중요하다고 여기기도 했어요. 패션이란 언제나 동시대적이어야 하고, 실제로 사람들이 입을 수 있어야 한다는 것도 배웠고요.

발망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선임된 과정도 궁금합니다.

역시 특별한 인연에서 시작됐죠! 당시 저는 발망에 투자한 사람들과 함께 일하고 있었는데, 마침 그들이 새로운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를 찾고 있었거든요. 당시 발망은 다소 보수적이고 고루한 느낌의 하우스였습니다. ‘졸리 마담(Jolie Madame, 아름다운 부인이라는 뜻으로 피에르 발망의 고급스럽고 우아한 디자인을 칭함)’이라는 이미지에서 몇십 년간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으니까요. 저는 그 이미지를 완전히 뒤집고 싶었습니다.

발망 2010 S/S RTW. Getty Images

발망 2010 F/W RTW. Getty Images

발망 2008 F/W RTW. Getty Images

발망의 유산을 어떻게 해석했나요?

라반에서 했던 것과 같은 방식으로 접근했죠. 피에르 발망이 처음 선보인 꾸뛰르 컬렉션을 찾아봤어요. 첫 번째 룩은 심플한 울 팬츠와 톱, 그리고 당시에는 드물었던 플랫 슈즈를 매치한 ‘데이웨어’ 스타일이었죠. 마지막 룩에는 화려한 자수 장식 드레스가 등장했고요. 이 두 룩을 출발점으로 삼았습니다. 당시 제가 생각하던 ‘오늘날의 여성’을 위해 정교한 장식과 자수를 더한 이브닝 미니 드레스를 선보였죠. 쿨한 분위기와 화려한 에너지를 동시에 표현하기 위한 선택이었습니다. 제가 생각한 ‘데이웨어’는 청바지, 티셔츠, 카고 팬츠, 블레이저와 가죽 재킷 같은 옷이었어요. 창립자의 아이디어를 계승하되, 새로운 시대의 라이프스타일에 맞게 재해석한 거죠.

그때의 발망 옷은 누구를 위한 것이었나요?

제 작업은 언제나 ‘애티튜드’와 ‘개성’에 관한 것입니다. 옷을 입은 사람이 더 강인해진 듯한 기분이 들었으면 해요.

발망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직을 그만뒀을 때 루머가 정말 많았잖아요. 이제 진실을 밝힐 준비가 됐나요?

모든 일에는 끝이 있는 법이죠. 책 한 권을 끝낸 뒤 또 다른 책을 펼쳤을 뿐입니다.

개인적으로는 페이스 커넥션에서 선보인 디자인을 무척 좋아했어요. 디자인에 대한 전권을 보장받았나요?

페이스 커넥션 2017 F/W RTW. Getty Images

페이스 커넥션 2017 F/W RTW. Getty Images

네, 그게 제가 내건 조건이었죠.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것을 제 방식대로 한다는 것. 흥미로운 사실은 제 계획을 자세히 설명하기도 전에 계약이 성사됐다는 것입니다. 물론 머릿속에는 모든 그림이 완성되어 있었고요. 저는 쇼룸을 하나의 편집숍 혹은 빈티지 숍처럼 꾸미고 싶었습니다. 컬렉션을 위해 테마를 정하기보다 협업과 집단 창작에 의해 기능하는 그런 브랜드로 만들고 싶었죠. 스트리트 아티스트와 협업해 옷에 페인트를 칠하고, 젊은 디자이너들과 함께 일하며 더 많은 사람과 접점을 만들고 싶었어요.

페이스 커넥션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일하고 있다는 사실을 공개적으로 발표하지 않았죠. 의도적인 선택이었나요?

네. 결국 사람들을 설득하는 것은 ‘좋은 옷’이라는 사실을 증명하고 싶었어요. 굳이 유명 디자이너의 이름을 내걸지 않아도 팔리는 옷이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고, 결국 그 목표를 이뤘죠.

그때 페이스 커넥션은 발망보다 훨씬 펑크적이고 그런지한 분위기였던 것으로 기억해요.

아마 그랬을 겁니다. 하지만 저에게 펑크란 어떤 스타일을 뜻하지 않습니다. 펑크란 곧 자유로운 라이프스타일을 의미하거든요. ‘무엇에도 신경 쓰지 않는다’는 태도이기도 하고요.

캐스팅과 촬영, 스타일링도 직접 담당했나요?

물론이죠. 제 비전을 온전히 표현하고 싶었으니까요. 단순한 룩북이 아니라 화보 같은 비주얼을 만드는 것이 목표였습니다. 매 시즌 새로운 모델을 캐스팅했죠. 한번은 10명을 캐스팅한 적도 있어요. 뚜렷한 개성과 독특한 분위기를 지닌 젊은 모델을 직접 발굴해 촬영하는 것도 즐거웠습니다. 그래서 룩북 제목도 ‘페이스 커넥션의 얼굴들(Faces at Faith)’이라고 붙였고요. 쿨한 아이들로 이뤄진 갱단 같은 느낌이랄까요? 결국 제가 중요하게 여긴 것은 늘 옷이 아니라 사람이었던 것 같습니다.

카파와의 협업도 인상적이었어요.

원래 카파를 아주 좋아했습니다. 확대해 바랜 듯 표현한 카파 로고를 낡고 해진 오버사이즈 티셔츠에 프린트하거나, 체크 패턴 울 팬츠나 스팽글 장식 조거 팬츠의 옆선에 스포츠 테이프를 더했죠. 저는 늘 그런 식으로 협업해왔습니다. 특정 브랜드의 요소와 제 비전을 섞어, 완전히 새로운 제품을 만들어내는 식으로 말이죠.

페이스 커넥션을 떠난 후 패션계에서 한동안 멀어져 있었죠. 그 이유를 물어봐도 될까요?

2017년에 브랜드를 떠나며 또 한 권의 책을 끝냈죠. 패션계를 아예 떠나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단지 디자이너로 일하지 않았을 뿐이죠. 한동안 다양한 브랜드의 디자인과 이미지를 자문하는 컨설턴트로 활동했습니다. 머릿속에 있는 여러 아이디어를 표현할 다른 수단을 찾고 싶었거든요.

마지막으로 ‘스키니 진의 귀환’에 대한 생각이 궁금해요.

이런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이해가 되지 않아요. 저는 스키니 진이 거리에서 자취를 감춘 적이 한 번도 없다고 여기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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