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vogue · 2026년 8월 5일

서울, 여름 그리고 소녀들

사건의 이전과 이후

백온유

우리는 셋이었는데 결국 둘이 되고 말았다. 원래대로 돌아온 것뿐이다. 하지만 정말 그뿐일까. 우리는 우리가 확실히 달라졌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우리는 한결 미흡했다. 우리는 ‘가짜’ 같았다. 일상은 치명적으로 따분했고 우리는 서로를 원망했다. 나는 이후를, 이후는 나를 보며 말했다. 너를 도저히 예전처럼 대할 수가 없다.

그 애는 나와 이후를 구별하지 못했다. 그 애가 “사람들이 너희를 구분한다는 게 신기한데”라고 말했을 때 이후가 말했다. “틀렸어. 구분이 아니라 구별이라고 말해야지. 구분은 대상을 어떤 기준에 따라서 나누는 거야. 너는 꿈과 현실을 구분하지 못하는구나, 너는 선과 악을 구분하지 못하는구나, 그럴 때 구분한다고 표현하지. 구별은 이럴 때 써. 진품과 모조품은 결국

구별돼, 쌍둥이지만 성격은 확실히 구별돼. 차이와 다름을 표현할 때 구별을 쓰는 거야.”

예를 들며, 이후가 나를 향해 슬쩍 웃었다. 이후는 언제나 바른말을 했다. 이후는 그래서 강단 있고 냉철하다는 소리를 들었다. 그래서 종종, 어쩌면 자주 미움을 받았다. 이후가 그렇게 공격적으로 말할 때 사람들은 말했다. “이런 면에서는 확실히 이전이가 나아.” 과연 그럴까. 이후가 불편해하는 것은 나도 질색하는 것이었다. 이후가 지적하는 문제는 내가 오래도록 꺼림칙하게 여기던 것이었다. 이후가 늘 기꺼이 미움받기를 택했기에, 나는 편했다. 나는 발견하는 사람이었고 이후는 바꾸는 사람이었다. 이전과 이후는 그래서 함께해야 했다.

그 애를 발견한 것은 나였다.

옆집 할머니 조카 손녀라더라. 방학 동안 여기 있을 거래. 혼자 놀던데.

이후는 말했다. 우리가 필요하겠네.

우리, 그러니까 ‘진짜 우리’들은 방학 동안 내내 함께했다. 옆집도, 우리 집도, 우리를 지키거나 지시하거나 통제할 어른이 늘 집을 비웠다. 우리는 서로를 돌보기로 했다. 그 애가 우리 집에 왔을 때, 나는 그 애가 너무 빠른 속도로 우리 일상을 침범, 잠식, 그리고 장악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자발적으로 그 애를 집에 들였음에도 왠지 그 애가 멋대로 밀려 들어오고 있다는 기분을 떨칠 수 없었다. 그리고 그게 싫지 않아서, 사실은 정신이 아득해질 만큼 기분이 좋아서 이상했다. 그 애가 우리 집 거실에 벌러덩 드러누워 낮잠을 잘 때, 선풍기 바람에 그 애의 머리카락이 날릴 때, 시폰 커튼을 통과해 들어온 옅은 햇빛이 그 애의 몸 위에 담요처럼 드리워질 때 나와 이후는 말없이 그 애를 내려다보며 1시간이고 2시간이고 시간을 흘려보냈다. 이후와 나는 서로가 느끼는 감정이 어떤 것인지 알고 있었다. 텔레파시라고 해야 할까. 감응인지 공명인지 정확하게 알 수는 없지만 우리가 느꼈던 감정이 행복감이라는 것, 그것만은 똑똑히 알고 있었다. 우리는 오랜만에 우리의 몸에 기분 좋게 가득 차 있었다. 빈틈없이 충만했다. 거의 넘칠 지경이었다.

우리 둘을 잘 구별하지 못해서인지 그 애는 이후와 나를 대하는 태도가 똑같았다. 학교 친구들과는 달랐다. 이후는 아이들에게 미움을 받았지만 동시에 존중받았다. 친구들은 나를 편하게 대했지만 사실 조금 우습게 여기기도 했었다. 이후는 웬만한 일에는 감응이 없었고, 대개 시큰둥하게 반응했다. 몇몇 애들은 그런 이후를 재수 없다고 헐뜯기도 했지만 그러면서도 이후를 대할 때 신중하게 말을 골랐고, 자기도 모르게 비위를 맞추려 애썼다. 그게 이후가 가진 신묘한 능력이었다. 똑같은 몸과 얼굴을 가진 내게는 없는 아우라. 누군가를 긴장하게 만드는 힘. 내가 갈망했던 것.

아이들은 내게 최소한의 노력도 하지 않았다. 왜일까? 이전의 장점은 밝고 유쾌한 것. 모두에게 호의적이며 과하게 명랑함. 가족을 포함한 모두가 나를 그렇게 정의했고 무턱대고 내가 자신을, 그리고 그들을 (당연히) 좋아할 거라고 여겼다.

그러나 그 애는, 나를 대할 때도, 이후를 대할 때도 어느 정도 무심했다. 무례하다고 느껴질 만큼 조심성 없이 우리를 휘젓고 다녔다. 꼭 그만큼 천진하고 무구했다. 우리 둘을 구별하지 못하는 것에 대해 미안해하지도 않았다. 그 이유가 전부는 아니었지만, 어쨌든 나는 그래서 그 애를 더 좋아하게 되었다. 이전과 이후를 차별하지 않는 사람은 태어나서 처음 경험했다.

그 애는 우리의 것을 매번 무참히 빼앗아갔다. 망설이지도 않고 웃으며 선언했다. 이제부터 이건 내 거. 물건을 주머니에 쏙 집어넣으면 우리는 속수무책으로 빼앗길 수밖에 없었다. 오늘부터 여긴 내 자리. 그러면 그 말을 따를 수밖에 없었다. 너무 짧다는 이유로 엄마가 못 입게 해서 모셔두고만 있던 원피스를 마음대로 꺼내 입고 그 애가 어때, 하고 물었을 때 우리는 머저리처럼 너무 예쁘다, 하고 감탄만 했다. 그 애는 삼촌에게 선물 받아 세 번밖에 안 써본 만년필로 내 일기장 가득 낙서를 했고, 아버지가 사준 필름 카메라를 가져가 아무렇게나 필름을 소진했다. 나중에 인화해보니 온통 자기를 찍은 사진뿐이었다. 거울에 비친 자기의 얼굴, 자신의 손과 발, 무릎, 신발, 그림자. 나중에 나와 이후는 그 사진을 갖기 위해 싸웠다.

여름방학이 끝나가고 있을 때, 우리는 우리의 일부(그 애)를 잃게 될 날이 다가오고 있음을 깨닫고 초조함을 느꼈다. 하루하루 지날수록, 나는 그 애를 독점하고 싶은 마음이 커졌다. 아주 잠깐이라도 좋으니 온전히 ‘우리만의’ 시간을 갖고 싶었다. 그러려면 이후를 배제해야 했다. 나와 더 친하기를 바란 게 아니라, 나하고만 친하길 원했으니까. 나는 서로를 구속할 수 있는 무언가가 필요하다고 느꼈다. 비밀. 그래, 비밀이 필요했다. 나는 계산했다. 이 비밀을 들으면 결코 자신을 내주지 않을 수 없을 것. 비밀을 듣는 순간 우리의 우정과 사랑에 즉시 효력이 발생할 것. 그 애는 나를 잊을 수 없을 것. 분명 그렇게 될 것. 그 애를 얻으면, 나는 더 이상 분열하지 않을 것.

그리하여 나는 고백했다. 이후가 잠들어 있을 때였다. 우리는 창문을 열고 베란다 난간에 기대어 있었다. 팔을 쭉 뻗으면 화단에서 자라난 나무의 나뭇잎을 잡을 수 있었다. 그 애는 나뭇가지를 흔들어 작은 바람을 일으켰다.

“네가 가기 전에 알아야 할 일이 있어. 이 몸은 원래 내 몸이야.”

그 애는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 애는 놀라지 않았다. 우리를 아는 모두가 내가 잠깐씩 이후의 몸에 깃든다고 생각했다. 이후가 주인이고 나는 가끔 다녀가는 손님에 불과하다고. 그들이 나를 의식하려 하지 않는 이유, 헤아리려 애쓰지 않는 이유는 바로 그거였다. 그러나 그 애한테는 분명히 일러둘 필요가 있었다. “내가 이후에게 양보한 거야. 이후는 훈계하기를

좋아하고 남의 허점을 찾아내 지적하곤 하지. 남이 움츠러들면 안심해. 하지만 난 알아. 그 애는 불안해서 그러는 거야. 자기 존재 자체가 이 세계의 허점이라는 걸 들킬까 봐 선수 치는 거지. 내가 그 애에게 나눠주는 거야. 내 몸을, 내 숨을, 그리고 너를. 넌 그걸 알아야 해.”

그때 잠들어 있던 이후가 불편해하며 꿈틀거렸다. 나는 그것을 느끼며 그 애의 목소리에 귀 기울였다. 그 애가 내게 말했다. “나는 공존하는 너희가 좋았는데. 너희와 나를 합치면 확실히 둘이라는 게 좋았어.”

그때 바람이 우리를 휘감고 지나갔다. “살면서 이 정도로 내 존재감을 느껴본 적 없어. 나는 늘 내가 온전한 1이 될 수 없다고 생각했어. 나는 고작 0.5, 운 좋으면 0.7, 가끔은 0.3이야. 흐리멍덩하고 어리벙벙해.”

나는 그 애의 자기평가가 몹시 가혹하다고 생각했다. 너는 이 집에서 늘 온전했는데 무슨 소리야.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속으로 하는 생각은 가끔 이후의 생각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너희는 1.5였다가 1.7이 되기도 하잖아. 내 빈틈을 채워줘. 우리 셋이 함께하면 가장 완벽해. 지난 한 달간 그랬어.”

그때 이후가 소스라치듯 깨어났고, 그 애에게 다그치듯 말했다. “헛소리하지 말고 진짜를 골라. 네가 고를 수 있는 건 하나야, 어설픈 둘이 아니라.”

그 애는 아무도 고르지 않았다. 그건 불가능한 일이라고 말했다. 그렇게 우리는 남겨졌다. 그 애라는 사건을 겪은 후의 우리는 조금씩 닮아가고 있었다. 거의 하나처럼. VK

백온유는 2017년 장편 동화 <정교>로 MBC 창작동화대상을 받으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2020년 <날개가 피어나는 날>로 제13회 창비청소년문학상을, 2025년 <반의반의 반>으로 제16회 문학동네 젊은작가상 대상을 수상하며 작품성을 인정받았다. 데뷔 9년 만인 2026년 첫 소설집 <약속의 세대>를 출간하며, 청년 세대의 불안과 연대를 섬세하게 그려 젊은 독자들의 뜨거운 공감을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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