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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피드에 탐닉하는 상속자, 그는 프라다를 입는다
vogue · 2026년 7월 3일

스피드에 탐닉하는 상속자, 그는 프라다를 입는다

스피드에 탐닉하는 상속자.

스웨덴에서 만난 로렌초 베르텔리는 프라다 그룹이 LVMH 같은 프랑스 대기업과 경쟁하기 위해 확장할 필요는 없다고 여긴다. “적절한 기회라면 검토하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굳이 할 필요는 없습니다.”

로렌초 베르텔리(Lorenzo Bertelli)는 프라다 공동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미우치아 프라다와 프라다 그룹 이사회 의장 파트리치오 베르텔리의 아들이자 그룹 최고 마케팅 책임자다. 그를 만나기 위해 스웨덴 북부로 떠나기 나흘 전, 프라다 그룹은 알라이아의 피터 뮐리에를 베르사체의 새로운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영입한다고 발표했다. 이탈리아 DNA가 깊이 밴 브랜드에 벨기에 출신 디자이너를 채용한 것은 과감한 선택이었다. 베르사체를 인수한 지 1년도 채 되지 않은 프라다가 변화를 시도하고 있다는 신호였다. 차기 CEO로 거론되는 그룹 후계자는 이를 두고 ‘본능적인 결정’이었다고 말하지만, 스웨덴 우메오(Umeå)에서 그는 다른 것에 마음을 빼앗긴 상태다. 매년 2월 열리는 월드 랠리 챔피언십(WRC) 경기, 랠리 스웨덴(Rally Sweden)에 참가하기 때문이다.

2017년 가족 사업에 합류하기 전, 로렌초는 패션계 경험이 많지 않은 프로 랠리 드라이버였다. 그는 전형적인 이탈리아 플레이보이 같은 외모의 소유자다. 군데군데 회색이 섞인 머리카락은 두껍고 곱슬거리며, 오뚝한 코는 어머니를 닮았다. 고향 밀라노에서 스쿠터를 타고 다니는 그는 고급스럽게 굴린 R 발음에 빠르고 짧게 끊어지는 영어를 구사한다. 방탕한 행동으로 가족의 체면을 깎아내리거나 회사에 합류한 뒤에는 ‘네포 베이비’의 사례로 치부될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는 그런 것과는 전혀 거리가 멀었다. 정말 열심히 일하는 사람이란 뜻이다.

오늘 아침 그가 받은 업무 전화는 단 한 통이다. 그는 오로지 경기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더 이상 전화가 오지 않길 바란다. 랠리 스웨덴에는 여덟 번 참가했다. “코너가 적고 도로가 넓기 때문에 속도가 아주 빠릅니다. 평균속도는 독일 고속도로 수준이지만, 얼음이 낀 시골길을 달리는 거죠.” 꽁꽁 얼어붙은 강이 반짝이는 도시를 가로지른다. 북쪽 끝에 위치한 탓에 오후 3시 30분이면 해가 지기 시작하고, 모두가 오로라를 볼 수 있는지 알려주는 스마트폰 앱을 가지고 있다. 우리는 나무판자로 둘러싸인 방에서 커피를 마시고, 근처 황무지에 차를 몰고 들어갔다, 그가 경기를 준비하고 있는 소나무가 늘어선 시골길을 보기 위해 추운 날씨에도 걸어 다니며 하루를 보냈다. 그는 1등을 하기 위해 참가하는 건 아니라고 했다. “우승은 불가능합니다. 지난 2년 동안 레이싱을 하지 않았거든요. 현실적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일상에서 잠시 벗어나는 디톡스 같은 거죠.”

그의 일상은 베르사체 인수 결정, 다리오 비탈레의 퇴장, 그리고 그 자리에 뮐리에가 오게 된 배경 같은 것에 대한 많은 궁금증을 포함한다. 인수는 프라다 그룹을 확장해 프랑스 대기업과 경쟁하려는 움직임으로 여겨진다. 투자자와 분석가들은 그들에게 늘 아이디어를 제시한다. “그들은 아이디어를 가지고 와서 우리 반응을 살피며 이런저런 말을 늘어놓습니다. 케어링이나 LVMH 소유가 아닌, 패션에서 유의미한 브랜드에 대한 얘기죠. 적절한 기회가 있다면 검토하지만, 그렇지 않으면 거절합니다.” 베르텔리가 말했다. 어떤 종류의 아이디어인지 물었다. “상상할 수 있는 모든 것이죠.” 그가 의도적으로 모호하게 답하자 가장 엉뚱한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테마파크? 프라다 카페를 방문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프라다 테마파크가 꿈같은 일이 될 거란 걸 알 것이다. “음, 아니요, 우리 분야에서요.”

그러고 나서 프라다 그룹이 두 프랑스 패션 대기업의 선례를 따르려는 의도는 아니라고 부인했는데, 앞서 말한 것과 다소 모순되게 들렸다. “케어링이나 LVMH처럼 거대해지는 것이 목표가 아닙니다. 우리 방식대로 성공하는 거죠. 성장은 기본적인 것입니다. 성장하지 않는다면 멋진 일들을 실행할 수 없으니까요. 그만큼 단순합니다.”

베르사체는 인수 자체를 위한 것은 아니었다. 프라다의 기존 고객과 겹치지 않으면서도 유서 깊은 패션 하우스를 소유할 수 있는 기회였고, 가격도 적당했다. “브랜드가 비즈니스보다 더 거대합니다. 엄청나고 놀라운 이야기가 담겨 있고, 현재 매출보다 훨씬 더 큰 잠재력이 있죠.” 마이클 코어스를 소유한 다국적 기업 카프리 홀딩스 소속이었던 베르사체는 두 명의 위대한 이탈리아 디자이너 조르지오 아르마니와 발렌티노 가라바니의 작고에 즈음해, 다시 이탈리아인의 손으로 돌아왔다. 베르텔리는 쓸데없이 시간을 낭비할 생각이 없다. “때로는, 훌륭한 요리는 약간의 소금만으로도 충분하죠.”

비탈레는 한 시즌 만에 베르사체를 떠났지만, 그의 2026 봄/여름 컬렉션은 패션계에서 큰 호평을 받았다. 14년 넘게 미우미우에서 일한 그는 프라다 그룹 내에서도 잘 알려진 인물이다. 2025년 1월 미우미우를 떠난 것이 충성스럽지 못한 결정처럼 보였을지도 모른다. 새로운 소유주는 자신들이 직접 뽑은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를 원했다. “그 이야기는 이제 어느 정도 알려졌습니다.” 베르텔리가 말을 이었다. “다리오가 미우미우를 떠나기 전부터 우리는 서너 달만 더 기다리도록 그를 설득하려 했습니다. 어떻게 될지 기다려야 했으니까요. 그는 야심이 있었고, 결정을 내렸습니다. 무엇도 그를 막을 순 없었죠. 결론적으로는 그에게 성공적인 여정이었습니다.”

나쁜 소식을 전하고 직원을 내보내는 것도 업무의 일부다. “그저 일입니다. 사람들로 이루어진 조직에서 더 낮은 직급에 있는 직원에 대해 말하는 것이 훨씬 더 어려워요. 우리가 가진 가장 막중한 책임은 직원들이 부양하는 수천 명의 가족이죠. 하지만 임원급에 있는 사람들은 금방 다른 자리를 찾을 겁니다.”

후임자를 고를 때가 되자, 베르텔리와 그의 부모를 비롯한 프라다 그룹의 내부 핵심 인사들은 머리를 맞대고 아이디어를 모았다. 과거 쇼를 살펴보고, 뮐리에와 가까운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눴다. 도나텔라 베르사체와도 이야기했지만, 베르텔리는 그녀가 선택에 관여하지 않았다는 점을 확실히 했다. 캘빈클라인에서 뮐리에와 함께 일한 적 있는 프라다 공동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라프 시몬스도 마찬가지다. 그들이 원한 것은 오늘날의 베르사체가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지, 브랜드 정체성의 경계를 어떻게 다룰 것인지에 대해 명확한 생각을 가진 인물이었다. 베르텔리는 베르사체 특유의 전형적인 관능미가 ‘지나치게 단순화된’ 경향이 있음을 깨달았다. 그리고 뮐리에가 알라이아에서 섹시함을 해석하는 방식에 흥미를 느꼈다. “그를 선택한 이유 중 하나는 그가 신체 형태를 잘 활용한다는 점이었습니다. 사람들이 입고 싶어 할 만한 옷을 만드는 디자이너도 필요했고요.” 베르텔리는 뮐리에가 알라이아의 발레 플랫 슈즈와 길쭉한 형태의 ‘르 테켈’ 가방으로 거둔 성공을 언급했다. 뮐리에는 7월부터 일을 시작하고, 그의 데뷔 쇼가 될 남성 컬렉션은 내년 1월에 발표될 예정이다. “사람들에게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에 대해 전략적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습니다.” 베르텔리가 강조했다.

소규모 가죽 제품 회사에서 세계적인 명성을 지닌 기업이 되기까지, 프라다의 성장 과정은 베르텔리의 어린 시절과 맞물려 있다. 그는 1988년에 태어났고, 그의 어머니는 그해 첫 여성복 쇼를 선보였다. 오늘날 프라다 그룹은 프라다와 미우미우뿐 아니라 슈즈 브랜드 처치스와 카 슈(Car Shoe), 요트 레이싱 팀 루나 로사, 그리고 지난해 12월 약 14억 달러에 인수한 베르사체를 보유하고 있다. 밀라노 카페 마르케시 1824도 프라다 그룹 소유로, 폰다치오네 프라다 바로 옆 밀라노 본사 사무실에는 이곳의 다양한 디저트가 제공된다.

베르텔리는 초등학생 시절 여러 색이 섞인 프라다 나일론 백팩을 메고 다닌 것이 못마땅했다. “다른 애들처럼 이스트팩이나 인빅타(Invicta) 백팩을 갖고 싶었거든요.” 그는 평생 공립학교에 다녔지만, 사람들은 그가 누구인지 이미 알고 있었다. “그렇게 쉽진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게 사실이니까요. 나를 알기도 전에 선입견을 갖곤 했어요. 그 상황에 적응하고, 진짜 친구와 지내는 법을 배워야 했죠. 누구를 믿고 누구를 믿지 말아야 할지 구별하는 법을 빨리 깨우쳤습니다.” 그는 특권을 둘러싼 오늘날의 담론을 잘 알고 있다. “장점도 있고, 압박감도 있습니다. 나이가 어리다면 더 그렇죠. 문제는 그것에 어떻게 대처하느냐입니다.” 그의 표현에 따르면 그의 부모가 “적절한 수준의 엄격함”을 유지했는데도 늘 공부를 열심히 하지는 않았다. 10대 시절에는 고등학교 1년을 유급했다. “진급에 실패한 거죠. 영어로 말하니까 꽤 가혹하게 들리는군요.” 그가 얼굴을 찡그렸다. 한 학년을 한 번 더 다닌 후 진지하게 공부에 임한 그는 밀라노 비타 살루테 산 라파엘레 대학교(Università Vita-Salute San Raffaele)에서 철학을 전공했다. 지금도 여전히 칸트, 플라톤, 니체를 좋아한다. 뉴욕 <인터뷰> 매거진에서 인턴으로도 일했다. “박스를 포장하는 일이 주 업무였어요.”

그는 자신이 프라다 그룹에 합류할 거라고는 짐작조차 하지 못했다. 패션과는 거리가 멀었기 때문이다. 그는 잘 차려입는 타입도 아니다. “옷을 좋아하지만 실용적인 걸 선호하고, 신경 쓰지 못할 때가 더 많아요.” 그는 스스로 캐주얼한 스타일이라고 여긴다. 거의 늘 프라다만 입는 사람이 캐주얼할 수 있는 만큼 말이다. 남동생 줄리오(Giulio)는 영화감독으로, 가업에 합류할 계획은 없다. “부모님은 늘 우리 형제에게 원하는 걸 하라고 하셨습니다.” 그가 살면서 처음으로 하고 싶었던 것이 랠리였다. 랠리는 트랙이 아니라 눈이 쌓이거나 자갈이 깔린 지형 위의 구불구불하고 좁은 도로에서 여러 명의 드라이버가 한 팀을 이루는 자동차 경주다. 아버지 파트리치오는 자동차 수집가지만, 로렌초는 원래 오토바이에 더 관심이 있었다. 축구와 아이스하키도 했다. 이탈리아에서 합법적으로 운전이 가능한 연령이 18세임에도, 그는 16세에 운전을 시작했다. “시골이었으니까요.” 그가 항변했다. “레이싱은 1990년대 유럽에서 하나의 문화였습니다. 스바루나 아우디의 전설적인 자동차를 보며 자라기도 했고요.”

그의 첫 정식 경기는 2011년 랠리 이탈리아 사르데냐(Rally Italia Sardegna)였다. 자동차들이 80~90마일로 달리는 레이스지만, 동시에 지구력이 필요한 스포츠다. “정신력이 중요합니다. 하루 종일 차 안에 있으면서 아드레날린의 변화를 견뎌야 하죠.” 전 세계에서 모인 드라이버로 팀이 구성되고, 영어로 소통하지만 모국어가 아닌 경우가 대부분이다. 물웅덩이나 급커브 같은 상황에 대한 명확한 정보 전달도 중요하다. “헬멧을 쓰는 순간, 인생의 사소하고 하찮은 문제는 전부 사라집니다.” 경기를 마치면 책을 읽거나 카드 마술을 하면서 긴장을 풀곤 한다(연극적인 유전인자가 있는 게 분명하다. 미우치아는 마임을 배운 적이 있다).

“실력이 향상되고 있을 때 그만뒀지만, 세계 랠리 드라이버 10위권에 든 건 꽤 대단한 일이죠.” 아홉 번째 랠리 스웨덴에 출전하는 베르텔리가 말했다.

“모두 다 그렇듯 처음에는 재미로 시작했습니다. 점점 진지한 일이 된 거죠.” 베르텔리가 말했다. 하지만 프로 랠리 드라이버를 직업으로 삼는다는 것은 1년에 200일을 집이 아닌 곳에서 지내며, 새벽 5시에 일어나 밤늦게 잠드는 삶을 의미했다. “실력이 좋아지던 시기에 그만뒀지만, 세계 랠리 드라이버 10위권에 든 건 꽤 괜찮은 성적이죠.” 그는 월드 랠리 챔피언십 투어를 중단하기로 결정했다. 은퇴 전 마지막 경주는 2017년 랠리 아르헨티나(Rally Argentina)였다. 아버지와 어린 시절부터 가까웠던 친구들도 함께했다. 금융계나 의료계 종사자, 금속 주조 공장에서 일하는 이도 있다. 그들은 길가에서 초리소 소시지를 구워 먹으며 그를 응원했다.

그는 밀라노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낼 수 있게 되어 안도했다. 그는 밀라노를 “인간적인 규모의 대도시”라고 묘사한다. 베르텔리는 여가 시간을 어떻게 보내는지에 대해 말을 아끼는 편이다. 가족이나 친구들과 시간을 보내는 것 외에는 사생활에 대해 구체적으로 말하지 않는다. 다만 랠리 드라이버 경력을 마무리 지을 때쯤 사랑에 빠졌다고 밝혔다. 10년 전 애프터 파티에서 엘레나 바실레(Elena Basile)를 처음 만났다. 그녀를 자신의 반쪽이라고 부른다. 바실레는 아이웨어 브랜드 룩소티카에서 일한 적이 있지만, 업계 밖의 사람이다. “가끔 쇼에 함께 참석하면 사람들이 그녀의 사진을 찍기도 하지만, 비즈니스 밖에서는 우리만의 평범한 삶을 삽니다. 레드 카펫에도 꼭 참석해야 할 때만 서죠.” 약혼한 사이지만, 아직 결혼 계획은 없다. “언젠가는 할 거예요. 진짜 결혼은 함께 가족을 꾸리는 겁니다. 결혼과 약혼의 차이를 잘 모르겠어요. 차이가 없죠.” 2023년에는 그들의 딸이 태어났다. 프라다 일가로 성장하는 것에 대해 딸에게 자신의 경험을 어떻게 알려줄지 고민 중이다. “아직 시간이 많으니까요.” 지금은 작은 이정표에 더 집중하고 있다. 좀 더 크면 스케이팅을 가르쳐줄 생각이다.

갑자기 부모와 함께 일하게 된 것에 대해 물었다. “상상하는 그대로입니다.” 그가 냉소적인 어조로 말하며 손으로 머리칼을 쓸어 넘겼다. “사업과 가족, 사생활에 여러 상황이 생기고, 일과 분리하려고 하지만 때로는 당연히 섞이기도 하고, 그런 거죠.” 그렇다면 회의에서 그는 어머니를 뭐라고 부를까? 엄마, 미우치아, 아니면 프라다 여사? 아버지는? “그냥 부르지 않습니다.” 그가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1997년 ‘베니티 페어’ 8월호에 게재된 사진. 가족이 함께 머무는 밀라노 집에서 남동생 줄리오와 함께했다.

2025년 로마에서 부모님과 함께.

그의 첫 프로젝트 중 하나는 리나일론 캠페인이었다. 어릴 적 메고 다니던 대표적인 프라다 나일론을 해양 폐기물, 섬유 폐기물, 어망을 재활용한 재생 나일론 소재로 대체해 상징적인 초기 디자인을 재해석한 것이었다. 이 프로젝트는 2021년부터 2024년까지 프라다의 두 자릿수 성장을 견인했고, 2025년에는 9% 성장을 이루는 데 기여했다.

그러나 프라다 그룹에서 일하기까지의 과정이 완전히 순조로운 것은 아니었다. 프로 스포츠 선수였기에 압박은 얼마든지 견뎌낼 수 있었다. 문제는 안정되고 반복적인 삶이라는 새로운 일상이었다. “랠리를 그만두고 매우 힘든 시기가 있었습니다. 아드레날린이 분출되는 기분이 그리웠고, 실제로 약간 무기력해졌죠.”

가족 사업을 성장시키는 일도 아드레날린을 끌어내기에 충분하다. 이 상장 기업의 시가총액은 약 125억 달러에 달한다. 베르텔리는 2021년부터 이사회 일원으로 활동해왔다. 미래의 프라다를 어떻게 정의하고자 하는지는 그에게 주어진 중요한 과제다. “프라다는 하나의 문화를 상징합니다. 문화는 동시대를 이해하는 도구이기에 그만큼 중요하죠. 프라다는 정당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 안에는 많은 의도와 아이디어가 담겨 있으니까요.” 그가 미소 지으며 덧붙였다. “어리석은 생각이겠죠. 최선을 다한다 해도, 나를 두고 부유하다느니 패션계 사람이니 어쩌니 말이 많을 겁니다. 설득력도 전혀 없을 테고요. 그러니 그냥 농담입니다.”

베르텔리는 평생 어떤 형태로든 남에게 보이는 공적인 정체성을 가지고 살아왔다. 익숙하지만 그걸 즐긴다는 뜻은 아니다. 지난 1월, 프라다 본사에서 처음 만났을 때 그렇게 말했다. 본사는 건축가 렘 콜하스가 복잡한 대규모의 옛 진 증류소를 산업적인 스타일의 기업 단지로 개조한 곳이다. 우리는 회의실에 있었고, 그는 마르케시 1824의 코르네토를 조금씩 뜯어 먹고 있었다. 그의 소박한 사무실은 거대한 커뮤니케이션 부서의 탁 트인 사무 공간에서 조금 벗어난 곳에 있다. 수백 명의 직원들이 통화하는 소리가 하루 종일 웅웅대지만, 그에게는 방해라기보다 동기부여처럼 느껴진다.

전날 공개된 2026 가을/겨울 남성 컬렉션 쇼는 해진 소매 끝과 색이 바랜 원단처럼 시간의 흐름과 불완전함을 보여주는 디테일을 인상적으로 조명했다. 옷이 몸에 닿고 시간과 함께 닳아가며 지니게 되는 인간성에 대한 발언이었다. 미우치아와 시몬스는 쇼 노트에 이렇게 적었다. “삶의 흔적을 담는 것은 지속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기억하는 것은 존중의 표시다.”

베르텔리는 옷을 디자인하지는 않지만, 모든 프라다 쇼에 참석한다. 백스테이지가 아니라 프런트 로 중앙에 앉는다. 본사에서의 만남 한 달 뒤, 2026 가을/겨울 여성복 쇼가 열렸을 때 그는 메타의 마크 저커버그와 그의 아내 프리실라 챈 옆에 앉아 있었다. “좋든 싫든, 당연히 그것도 업무의 일부입니다.”

프라다 여성복 2026 가을/겨울 쇼에서 프리실라 챈과 마크 저커버그 부부 옆에 앉아 있는 베르텔리. 정치 혹은 IT업계 인물과 어울리는 것에 대해 묻자, 그는 “좋든 싫든, 당연히 그것도 업무의 일부”라고 답했다.

그들이 권력과 연대, 소속에 대한 메시지를 전달하는 방식은 큰 이슈가 됐다. 베르텔리와 그의 가족은 프라다를 통해 상당한 부와 영향력을 구축했지만, 동시대의 다른 억만장자 집단과는 다른 입장을 택했다. 예를 들어 LVMH 일가, 제프 베이조스, 일론 머스크, 저커버그는 모두 2025년 1월 도널드 트럼프의 취임식에 참석했다. 초대를 받았는지, 그런 자리에 갈 생각이 있는지 물었다. “아니요, 당연히 초대받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가지 않았을 것 같군요. 솔직히 정치란 양날의 검이죠. 내가 배운 것은 너무 깊이 관여하지 않아야 한다는 거예요. 아마 그것이 우리 중 아무도 그곳에 가지 않은 이유일 겁니다. 대통령 당선인이 민주당이나 공화당이라서가 아니라요.”

베르텔리는 정치적으로 자신을 중도좌파라고 설명했다. “어느 순간이 되면 돈은 더 이상 중요하지 않습니다.” 이 시대의 수많은 유명 갑부들이 추구하는 끊임없는 부의 축적과는 거리가 먼 가치관이다. “오늘날 서구의 가장 큰 문제는 양극화와 불평등이에요. 다른 사람보다 많은 것을 소유한 사람으로서, 자기 수입의 절반을 다른 사람에게 줘도 괜찮습니다. 아무리 큰 금액이라도요.”

자본주의와 정치에 대한 그의 입장에는 철학 공부의 흔적이 보인다. 이론적이다. 베르텔리의 관점에서 자본주의는 빠른 성장에 관한 것이다. 정치의 역할은 규제하는 것이며, 그의 표현대로 “생태계의 균형을 보존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필요한 일이지만 개인의 영역은 아니라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그는 기술도 규제가 필요하다고 여긴다. “무기는 규제해야 하는 기술입니다. AI도 마찬가지죠. 소셜 네트워크도 과거에 비해 더 많이 규제되고 있어요.” 그가 설명을 이었다. “하지만 정치는 단속에 너무 느립니다. 개인 영역이 점점 더 빠르게 성장하고 있기 때문이죠. 결국 정책이 중요하다는 겁니다. 어쩌면 유럽에서는 정책을 과도하게 적용하는지도 몰라요. 사회는 GDP 성장세로만 평가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중요한 건 삶의 질입니다.”

우메오로 돌아와서, 나는 그가 밀라노에서 카드 마술을 보여주겠다고 한 약속을 지킬지 궁금해졌다. 패션 기업 임원이 지닌 기술치고는 엉뚱하고 괴짜 같다. 하물며 랠리 팀 드라이버들이 준비 중인 텐트에서 그걸 한다는 건 더 그렇다. 우리 주위에는 타이어가 쌓여 있었고, 큼지막한 파카를 입은 사람들이 오랜만에 경기장으로 돌아온 베르텔리를 반갑게 맞았다. 텐트를 떠나기 전, 그에게 카드를 가져왔는지 물었다. 약속을 기억하고 있던 그는 자신의 카드 다발에서 한 장을 뽑으라고 했다. 나는 스페이드 8을 집었고, 지시대로 그에게 보여주지 않았다. 그는 카드를 섞은 다음 한 장을 보여줬다. “이건가요?” “아니요.” 내가 답했다. “이것도 아닌가요?” “아니에요.” “그럼 이거?” “네, 맞아요.” 나는 흥분해서 소리를 질렀다. 카드 쇼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그는 내게 직접 그 카드를 무작위로 끼워 넣으라고 했다. 아무런 조작이 없다는 걸 증명하기 위해 카드 다발을 보여줬다. “얍!” 그가 과장된 동작으로 주문을 넣으며 맨 위에 놓인 카드를 뒤집었다. 스페이드 8이었다. 그는 즐거워 보였다. 한꺼번에 많은 일을 해내려 애쓰면서도 여전히 인간적인 작은 멋을 부릴 시간을 만들어낼 수 있는 사람, 바로 로렌초 베르텔리다. V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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