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구둣주걱은 필요 없을까요? 발 사이즈보다 크게 신는 하이힐이 등장했습니다.
Victoria Beckham 2025 F/W RTW
올가을 가장 기이한 신발 트렌드입니다. 일부러 크게 신는 하이힐이 등장했거든요. 보자마자 어린 시절이 떠올랐죠. 엄마 몰래 하이힐을 신고, 주체하지 못해 신발을 끌어야 했던 그 시절이요. 지금은 엄마보다 발이 커서 반대 상황이 됐지만요. 아련한 기억은 접어두고, 이것이 과연 가능한 트렌드인가 싶었죠.
가장 먼저 떠오른 건 마크 제이콥스의 컬렉션이었습니다. 만화적 요소로 가득했던 2024 가을/겨울 컬렉션과 2025년의 모든 컬렉션이요. 신발 자체가 큰 것도 그랬지만, 부러 신발 끝 라인보다 크게 만든 슈즈를 보면서 만화 속 어린아이나 디즈니 만화영화 주인공이 떠올랐거든요. 트렌드가 될 거라고도 생각지 못했죠.
Marc Jacobs 2024 F/W RTW
Marc Jacobs 2025 S/S RTW
Marc Jacobs 2025 S/S RTW
프랑스 <보그> 패션 에디터 알렉상드르 마랭(Alexandre Marain)은 인스타그램 속에서 발견했다고 했어요. 누가 봐도 큰 하이힐 속에 발을 밀어 넣은 사진이었는데, 빈 응용예술대학교(University of Applied Arts Vienna) 패션디자인과를 갓 졸업한 알라라 코크만(Alara Kocman)의 졸업 컬렉션에서 가져온 것이었답니다. ‘소녀는 그저 즐기고 싶을 뿐(Girl Just Wanna Have Fun)’이라는 제목의 컬렉션은 유년의 순수함과 사춘기의 각성 사이, 불안정한 나이에 대한 헌사였다고요.
고백하자면 이 사진을 보고 어쩔 수 없이 큰 신발을 신어야 했던 10여 년 전 여자 아이돌이나 모델들의 안타까운 모습이 떠올랐죠. 하지만 컬렉션이 뜻하는 것을 알고 나니, 하이힐이 가지는 의미가 이해가 됩니다. 아빠 옷장에서 꺼내 입은 듯한 무드를 표현하는 오버사이즈 의상처럼 이 신발 또한 어른의 옷을 몰래 입어보던 시절을 상기시키죠. 언젠가 발을 들이고 싶었던 세계에 대한 아이다운 동경을 무대에 펼쳐놓은 셈이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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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션은 언제나 비율과 볼륨을 가지고 노는 것을 즐겨왔습니다. 건축에 가까운 정교함으로 커팅과 실루엣을 변주해왔죠. 신발 역시 디자이너들의 훌륭한 장난감이었고요. 때로는 파격적으로, 때로는 유희적이고 엉뚱한 디자인으로 상상력을 펼칩니다. 이번 마티유 블라지의 2026 가을 꾸뛰르가 바로 그 예죠. 샤를 페로(Charles Perrault)의 동화책 <요정들(Les Fées, Contes des Contes)>에서 영감을 받은 컬렉션으로, 하이힐에도 장난스러운 요소가 가득했고요.
Chanel 2026 Fall Couture
Chanel 2026 Fall Couture
Chanel 2026 Fall Couture
발렌시아가는 피엘파올로 피촐리의 디렉션 아래, 작은 리본 장식이 달린 하이힐이 등장했습니다. 그는 일부러 갑피가 발등 위로 올라오도록 디자인해, 발이 신발 안에 둥둥 떠 있는 듯한 착시를 만들어냈죠. 리본이 신발 안쪽으로 들어가는 바람에 갑피가 들린 것처럼 보이게 하는 상상력을 발휘한 거죠.
Balenciaga 2026 F/W RTW
Balenciaga 2026 F/W RTW
Balenciaga 2026 F/W RTW
빅토리아 베컴의 2025 가을/겨울 컬렉션에서도 비슷한 형태를 볼 수 있었어요. 그녀는 좀 더 노련하게 트롱프뢰유(착시) 효과를 얻어냈습니다. 사실 이 기사를 쓰기 전까지 모델들이 큰 신발을 신었다고 여겼거든요. 구두를 자세히 보세요. 일부러 신발이 크게 보이도록 뒤축을 살짝 늘려놓았습니다. 모델들의 발뒤꿈치는 신발에 안정적으로 고정되어 있는 거죠.
Victoria Beckham 2025 F/W RTW
Victoria Beckham 2025 F/W RTW
착시 효과는 새로운 트렌드는 아닙니다. 하지만 지금의 디자이너들이 어린 시절 추억에 지속적으로 사로잡혀 있음은 확실하죠. 경제, 정치, 환경 등 모든 것이 극으로 향하는 2026년, 지금의 불안을 반영한 것인지도 모르죠. 결과적으로 디자이너들은 패션이 단순히 입는 옷이 아니라 상상력을 발휘하는 실험의 장이자 이야기의 캔버스가 된다는 점을 상기시킵니다. 하이힐은 언제나 환상과 성장을 동반하며, 추억의 상징이 될 수 있다는 것까지도요.
Chanel 2026 Fall Coutur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