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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땀순이’는 출근길에 이미 녹초가 됩니다. 그러니 장마와 폭염에도 뽀송뽀송 로비를 걸어 다니는 사람들을 보면서 유전자를 탓하죠. (미안해, 엄마.) 그러니 근사한 미니멀 룩은커녕 기온이 20도만 넘어도 제대로 된 옷차림을 하지 못하고, 너덜너덜해진 기본 티셔츠와 청바지만 걸치죠. 과거에는 검은색 원피스에 의존했고요. 특히 <보그> 사무실에 들어오면 이런 날씨에도 향기를 뽐내며 또각 소리를 내는 분들을 보면, 자괴감은 더 커집니다. 볼품없음이 극대화되거든요.
하지만 올해는 아직 극한의 더위가 찾아오지 않았는데도, 사람들의 스타일에서 묘하게 위안을 받고 있습니다. 지난해보다 멋 내기를 포기한 사람들이 보였거든요. 제가 아는 가장 스타일리시한 사람들조차 잠옷으로만 입던 낡고 해진 옷을 꺼내 입기 시작했습니다. 평범한 흰색 티셔츠조차 헬무트 랭 아카이브에서 ‘구해내야’ 하거나, 늘 입던 크루넥 스웨터가 ‘더 로우’ 제품이어야만 하던 바로 그 사람들이 이제 서랍 한구석에 구겨져 있던 물 빠진 옷을 아무렇지 않게 입고 있습니다. 패션계에서 가장 오래 지속되는 트렌드, 즉 남들과 다른, 남들보다 취향이 뛰어나다는 것을 인정받고 싶은 욕심 역시 여름에 굴복하는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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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보그>에서도 비슷한 고민을 말하더군요. 본인 스스로 “인정하고 싶지 않을 만큼 많은 세월을 쿨해 보이려고 애쓰며 보냈다”고 고백했던 패션 & 스타일 에디터 마호로 수어드(Mahoro Seward)는 ‘엠브레이식(Embrasic)’이라는 신조어를 만들었습니다. ‘받아들이다(Embrace)’와 ‘베이식(Basic)’을 합친 이 말은 애써 꾸며낸 심오한 취향을 증명해야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날 때 느끼는 해방감을 표현한 거죠. 단어 자체는 널리 퍼지지 않았지만, 그 의미에는 고개를 끄덕이게 되죠. 여기서 베이식은 대중적이고 흔한 것을 가리키는 말로, 남들 다 좋아하는 뻔한 걸 나도 좋아한다는 걸 부끄러워하지 않는 태도를 말합니다.
최근 들어 많은 이가 우리 안의 ‘베이식’한 취향과 화해 중입니다. 영화 <알라딘>이 국내에서만 1,280만 관객을 돌파한 것처럼 말이죠. OST ‘A Whole New World’를 흥얼거려보지 않은 이들이 있나요. 사실 매 순간 세련됨을 연기하는 건 지치는 일인 데다 솔직히 민망하기까지 합니다. 제 사수이자 <보그 코리아> 권민지 디지털 디렉터와도 대중성을 배척하는 후배 에디터들을 보면서 “언젠가 부끄러워질 거야”라고 몇 번이고 말했습니다. 우리도 그랬으니까요. 패션계의 위대한 실험가로 불리는 조나단 앤더슨도 대부분의 날을 남색 크루넥 티셔츠에 청바지, 살로몬 워킹화 차림으로 보내죠. 어쩌면 그가 이 업계에서 옷을 제일 잘 입는 (잘생긴) 남자일지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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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저 역시 파리의 샤르베(Charvet)에서 맞춘 셔츠의 미덕이나 파리 7구의 루비로사스(Rubirosa’s)에서만 살 수 있는 부드러운 로퍼에 대해 열변을 토하는 날도 있겠지요. 하지만 지금 당장은 세련된 취향이라는 감옥에 갇히고 싶지 않아요. 그러니 블라우스 단추는 풀어 헤치고, 이 계절에 어울리는 옷차림을 즐기는 거예요. 옷 입기 본연의 목적에 맞게, 실용적이고 복잡하지 않고 애지중지할 필요 없는 것을 받아들이는 거죠. 드라이클리닝 비용을 걱정하거나 매일 후루츠패밀리에서 다툼을 벌이는 계절이 아닙니다. 토트백에 아무렇게나 쑤셔 넣거나, 자전거 바구니에 휙 던져 넣거나, 별생각 없이 걸칠 수 있는 옷을 위한 계절이니까요. 이번 시즌 원하는 건 땀을 흘려도 되고, 아무 데나 앉아도 되고, 신경 쓰지 않아도 되는 심플하고 베이식한 옷입니다. 그냥 입고 살 수 있는 옷이요. 그런데 이상한 건 그렇게 입으니 예쁘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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