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뉴발란스는 어떻게 120년을 버텼나
DEALY · 2026년 9월 3일

뉴발란스는 어떻게 120년을 버텼나

닭 발을 책상에 올려두고 시작한 회사입니다 🐓

닭이 알려준 균형
사진 뉴발란스 992

1906년 보스턴. 아일랜드에서 건너온 윌리엄 J. 라일리가 차린 건 신발 회사가 아니라 아치 서포트, 그러니까 깔창 회사였습니다. 발이 아픈 사람들을 위한 교정 용품이었어요.

발 너비를 재기 시작했다
사진 뉴발란스 2040v5 (현행 모델)

그가 참고한 건 마당의 닭이었습니다. 발가락 세 개로 완벽하게 균형을 잡는 걸 보고 세 지점으로 받치는 구조를 만들었어요. 사무실 책상에 닭 발을 올려두고 손님에게 설명했다고 합니다. 회사 이름 '뉴발란스'도 여기서 나왔어요.

보스턴 마라톤 날 회사를 샀다
사진 뉴발란스 991v2

첫 신발은 1961년 트랙스터였습니다. 물결무늬 밑창으로 접지력을 잡은 러닝화였는데, 진짜 다른 점은 따로 있었어요. 길이만이 아니라 여러 너비로 만든 첫 러닝화였다는 겁니다. 발 모양이 사람마다 다르다는 전제에서 출발한 회사라 가능한 선택이었죠. 지금도 뉴발란스 사이즈에 D나 2E 같은 표기가 붙는 이유입니다.

아빠 신발이 제일 세련된 신발이 됐다
사진 잭 할로우 × 뉴발란스 T500

1972년 보스턴 마라톤이 열리던 날 아침, 짐 데이비스라는 사람이 이 회사를 삽니다. 그때 직원은 여섯 명, 하루 생산량은 서른 켤레였어요. 10년 뒤인 1982년에 990이 나옵니다. 100달러짜리 러닝화였어요. 당시로선 말이 안 되는 가격이었는데, 유명 선수를 앞세우는 대신 "그냥 제일 잘 만들었다"로만 팔았습니다. 광고에 스타를 안 쓰는 노선이 여기서 굳어졌어요.

그리고 어제, 983이 나왔다

그래서 오래 '아빠 신발' 소리를 들었습니다. 그런데 2020년대 들어 그 촌스러움이 그대로 강점이 됐어요. 유행을 좇지 않은 게 결과적으로 가장 큰 차별점이 된 겁니다. 에메 레온 도레, 조 프레시굿스, 잭 할로우 같은 이름들이 줄줄이 붙으면서 990v3와 2002R이 리셀 시장 상단으로 올라갔고, 미국·영국 공장에서 만든다는 사실이 마케팅 문구가 아니라 값이 됐습니다.

그리고 어제, 983이 나왔습니다. 옛 모델을 그대로 복각하는 대신 2000년대 러닝 카탈로그에서 조각들을 뽑아 새로 조립한 실루엣이에요. 캠페인엔 테니스 선수 코코 고프와 래퍼 아미네가 섰습니다. 10월 1일, 160달러.

120년 전 깔창 회사가 여전히 같은 걸 팔고 있어요. 발을 어떻게 받칠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