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포터, 요시다 카반 90년
DEALY · 2026년 9월 4일

포터, 요시다 카반 90년

전쟁 때 아내가 재봉틀을 다리 밑에 숨겨서 살아남은 회사입니다 🧵

도쿄의 작은 공방 하나였다
사진 JJJJound × 포터

1935년, 요시다 키치조가 도쿄에 가방 공방을 엽니다. 이름은 자기 성을 딴 요시다 카반. 지금까지 이어지는 사훈이 그때 나왔어요. 일침입혼(一針入魂) — 바늘 한 땀에 혼을 담는다는 뜻입니다.

아내가 재봉틀을 다리 밑에 숨겼다
사진 포터 바운스

그런데 창업 10년도 안 돼 전쟁이 옵니다. 키치조와 장인들이 줄줄이 군에 불려 가면서 공방은 사실상 멈춰요. 남편이 없는 동안 아내 치카가 한 일은 물건을 옮기는 것이었습니다. 도구와 원단, 재봉틀을 전부 도쿄 간다스다초의 철교 아래 창고로 넣었어요. 공습으로 도시가 타는 동안 그 창고는 살아남습니다. 전쟁이 끝나고 이 회사가 다시 가방을 만들 수 있었던 건, 거기 재봉틀이 남아 있었기 때문이에요.

호텔 짐꾼의 이름을 붙였다
사진 요시다 & Co. 90주년 기념 북

1962년, 요시다 카반이 처음으로 자기 브랜드를 냅니다. 이름은 포터 — 호텔에서 손님 가방을 나르던 사람들에서 가져왔어요. 로고에 모자 쓴 벨보이가 서 있는 이유입니다. 남의 이름으로 가방을 만들어 납품하던 회사가 자기 이름을 걸기 시작한 순간이었죠.

폭격기 재킷을 가방으로 옮겼다
사진 버즈릭슨 × 포터 90주년 MA-1

1983년엔 탱커가 나옵니다. 미 공군 MA-1 재킷에서 출발한 가방이에요. 가볍고 질긴 3겹 나일론 구조를 그대로 옮겼고, 안감이 오렌지인 것도 MA-1에서 온 겁니다. 조난했을 때 뒤집어 입으면 눈에 띄라고 만든 색이었어요. 40년이 지난 지금도 이게 이 브랜드의 대표작입니다.

90년째, 여전히 일본에서 만든다
사진 오렐 슈미트 × 포터

그리고 지금도 전 제품을 일본 안에서 만듭니다. 일본 장인이 직접 재단하고 박는 방식이에요. 90년 전 공방에서 하던 것과 원칙이 같습니다.

90주년을 맞아 기념 북이 나왔고, 지금은 뉴욕 소호에 5일짜리 매장을 열어놨어요. 9월 6일까지입니다.

철교 밑 창고에 숨겨둔 재봉틀에서 90년이 지났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