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르지오아르마니, 조르지오 아르마니, 의대생에서 연 매출 3조 원까지
재킷에서 어깨 패드를 빼버린 사람 이야기입니다 🕊️

1934년 이탈리아 북부 피아첸차에서 태어났습니다. 밀라노 대학 의학부에 들어가 3년을 다니다 그만두고, 군 복무 후 1957년 밀라노 백화점 라 리나셴테에서 쇼윈도 장식과 판매 일을 시작해요. 1960년대 중반 니노 체루티에게 발탁돼 남성복을 디자인했고, 동시에 제조사 열 곳 가까이의 프리랜서로 일했습니다. 학교에서 옷을 배운 적은 없어요. 쇼윈도와 공장에서 배웠습니다.

1975년 7월 24일, 연인이자 사업 파트너 세르지오 갈레오티와 함께 회사를 세웁니다. 그해 10월 첫 남성복 컬렉션. 그가 한 일은 재킷을 해체하는 것이었어요. 어깨 패드와 안감, 심지를 빼고 부드럽게 흘러내리는 '언스트럭처드 재킷'. 1980년 영화 '아메리칸 지골로'에서 리처드 기어가 그 옷을 입었습니다. 옷장을 열어 아르마니 셔츠와 재킷을 늘어놓는 장면 하나로 미국이 이 이름을 외웠어요. 1982년엔 타임 표지에 올랐습니다.

1981년 젊은 층을 위한 세컨드 라인 엠포리오 아르마니를 냅니다. 독수리 로고, 도시의 젊은이가 살 수 있는 가격. 이번 주 다리오 비탈레가 맡게 된 바로 그 라인이에요. 1985년, 갈레오티가 에이즈 합병증으로 세상을 떠납니다. 사업을 전부 맡아온 사람이었어요. 그때부터 아르마니는 디자인과 경영을 혼자 쥐었고, 죽을 때까지 회사의 유일한 주주로 남았습니다.

옷에서 시작해 향수, 화장품, 호텔, 가구, 밀라노 농구단까지. 연 매출 20억 유로가 넘는 회사를 대기업에 팔지 않고 혼자 지켰습니다. 2025년 6월 밀라노 패션위크에 처음으로 나타나지 않았고, 9월 4일 밀라노 자택에서 91세로 떠났어요. 조문객 1만 5천 명이 줄을 섰습니다. 브랜드 50주년 기념 컬렉션은 그가 없는 채로 브레라 미술관에서 열렸어요. 그가 마지막까지 손본 옷이었습니다.

유언장은 구체적이었어요. 재단이 30.1%를 갖고, 오랜 파트너 레오 델로르코가 40%. 그리고 18개월 안에 지분 15%를 팔되, LVMH·에실로룩소티카·로레알을 우선하라고 이름까지 적었습니다. 2028년 이후엔 상장이나 추가 매각. 그리고 이번 주, 미우미우 14년과 베르사체를 거친 다리오 비탈레가 엠포리오 아르마니 크리에이티브 디렉터가 됐습니다. 창업 이래 처음으로 바깥에서 온 디자이너예요. 첫 쇼는 FW27.
의대를 그만둔 쇼윈도 장식가가 만든 부드러운 재킷이 51년째 밀라노에 있습니다.